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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전라남도 장성군] 슬로우위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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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우위켄드


- 주소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구대해길 3-12

슬로우 위켄드는 전남 장성군 황룡면에 자리 잡고 있다. 캠핑장에는 일반 야영장 3면과 글램핑 10개 동이 마련되어 있다. 글램핑 객실 내부에는 침구류를 비롯해 개수대, 취사도구, 테이블 등이 갖추어져 있다. 부대시설로는 여름철 개장하는 수영장이 있다. 관리소에서는 화로 대를 대여해 준다. 주변에 산책로를 비롯해 카페, 낚시터, 운동장 등이 있다.


※ 소개 정보
- 문의및안내
010-6626-0251

- 신용카드가능정보
없음

- 애완동물동반가능정보
없음

- 유모차대여정보
없음

- 이용시간
15:00~익일11:00

- 주차시설
주차가능





◎ 이용요금
이용시설·기간에 따라 이용요금 상이하므로 예약 페이지 참조 및 전화 문의 요망



◎ 주요시설
안전시설 설비사항: 안전요원 배치, 안전보험 가입, 상비약 구비, 소화기, 화재감지기 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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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 관광 정보

⊙ 두남제


- 홈페이지
http://www.cha.go.kr

- 주소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산동 277

두남제는 광산동 종산부락에 있으며 행주기씨 문중제실이다. 건물은 화강석기단 위에 정평주초를 넣고 평주와 고주를 세운 정면 5칸, 측면 2칸의 한식기와 8작지붕이다. 마루는 귀틀에 의한 퇴마루로 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중앙에 대청과 좌우에 온돌방을 배치하였고 천정은 대들보위에 마루대공과 종보를 결구하여 종도리를 걸친 5량집이다. 마루와 좌우에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창호는 좌우 1칸씩은 분합문으로 되어 있고 중앙3칸은 4분합문으로 되어 있으며 띠살창이다. 상인방위에는 빗살창으로된 봉창이 있다. 창호좌우측에는 머름을 장식하였고 좌우측퇴마루는 머름을 대고 1단높인 마루이다. 대문은 맛배지붕의 평3문이며 담장은 토석혼축의 담징이다. 처마는 겹처마로 되어 있다.


⊙ 황룡강


- 홈페이지
장성 문화관광 http://tour.jangseong.go.kr

- 주소
전라남도 장성군 황룡면 일산2길

황룡강(黃龍江)은 장성에서 임곡을 거쳐 광산 涌珍山과 魚等山사이를 지나 어등산 남쪽을 흐르다가 송정을 지나 나주로 흐르는 강이다. 황룡마을은 요새지로서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곳이라 한다. 황룡강 石崔아래 깊은 물에서 목욕하는 군장을 일컬어 鳳凰淵에 龍이 살았다는 전설로 굳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황룡강의 유래는 황룡마을로부터 나왔을 것이며, 황룡마을의 이름은 이 지역을 지배하는 君長을 일컫는 황룡에서 유래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鳳凰淵(池)'라는 이름도 역시 이 지역을 지배하는 軍長과의 관련하에 명명되었을 것으로 결국 황룡강의 강명은 鳳凰淵과 관계속에서 해명된다.

* 총면적 547.3㎢, 유역평균 폭 8.8㎞, 유역형상은 직사각형의 평형상을 이루고 있다.

⊙ 하비스트랜드


- 홈페이지
http://harvestland.co.kr/

- 주소
전라남도 장성군 남면 청양길 46-16

하비스트랜드는 아이들이 자연, 농업,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광주 근교의 농촌체험 농장이다. 주중에는 학교, 유치원, 어린이집 등 단체 예약뿐만 아니라 아이 나이에 상관없이 체험이 가능하다. 주말은 5세부터 12세까지 체험이 가능하고, 4세는 한 달에 1번 클래스가 열린다. 농촌 원예 체험 농장인 이곳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 체험을 할 수 있으며, 천연염색 손수건 만들기, 다육화분심기, 발효식품 만들기, 백향과청 만들기 등이 있고, 감 따기, 고구마 캐기, 감자 캐기 등 제철에 볼 수 있는 채소, 과일들을 수확할 수 있다. 특히 여름철에는 패밀리풀, 프리미엄 패밀리풀, 프라이빗 그룹풀 3가지 타입의 단독풀을 운영한다. 물놀이장 물은 매일 깨끗한 지하 암반수로 교체하여 수질을 관리하고 있다. 하우스 내에 실내놀이터는 에어바운스, 레몬시소, 그림 그리기, 자석블럭, 주방놀이 등 놀잇감이 준비되어 있다. 우리 가족만을 위한 프라이빗한 공간으로 안전하고 깔끔하게 이용 가능하다.
하비스트랜드는 친환경적으로 운영하는 공간으로 곤충 및 벌레들이 있으므로 긴팔 옷과 운동화, 벌레기피제등을 준비해야 한다. 풀빌라, 황토펜션, 카페, 식당도 함께 운영하고 있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 칠송정


- 홈페이지
http://www.cha.go.kr

- 주소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곡길 73

칠송정은 광산구 임곡 광산동에 있으며 기효회(奇孝會)의 소건(所建)이다. 정명(亭名)은 지평동에 있는 오인(誤認)의 장수지소(藏修之所)인 칠송정과 동명의 정자이다. 기효회는 호를 함제(涵濟)라 하며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대적하였고 의곡(義穀) 3,000석을 수집하여 義州의 行在所로 수송하는등 큰공을 세웠다. 이로써 군기사검정(軍器寺劍正)을 제수받았으나 사양하고 선농인 이곳에 칠송정을 세워 소요하였으나, 亭 자체의 기록은 없다.


⊙ 월봉서원


- 홈페이지
http://tour.gwangju.go.kr

- 문경운
062-611-3636

- 주소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곡길 133

월봉서원 (月峯書院)은 1578년(선조 11)에 김계휘(金繼輝)를 중심으로 한 지방유림의 공의로 기대승(奇大升)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광산군 비아면 산월리에 망천사(望川祠)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646년(인조 24)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고, 1654년(효종 5)에 ‘월봉(月峯)’이라고 사액되었다. 1671년에 송시열(宋時烈) 등의 건의로 인근의 덕산사(德山祠)에 모셔져 있던 박상(朴祥)과 박순(朴淳)을 이향(移享)하였으며, 1673년에 김장생(金長生)과 김집(金集)을 추가배향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 그 뒤 전라남도유림에 의하여 1938년 5칸의 빙월당(氷月堂)이 건립되었으며, 1972년에 4칸의 고직사(庫直舍), 1978년에 외삼문(外三門)과 3칸의 장판각(藏板閣), 1980년에 사우(祠宇), 1981년에 내삼문이 건립되었다. 빙월당은 광주광역시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장판각에는『고봉집(高峯集)』 목판 474판이 보관되어 있다.

고대 기대승의 학덕을 기리고 추모하는 곳으로 춘∙추향제가 매년 개최된다. 한때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손되었다가 1938년 빙월당을 시작으로 1987년까지 사당과 외삼문, 장판각, 내삼문이 건축되었다. 수십년에 걸쳐 하나하나 구축한 점이 특징적이다. 월봉서원에서는 놀이와 예술로 철학을 배우고 조선 선비의 하루를 체험하는 등 다양한 교육 문화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 빙월당


- 홈페이지
http://www.cha.go.kr

- 주소
광주광역시 광산구 광곡길 133

* 성리학자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을 배향하는 곳, 빙월당 *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고봉(高峰) 기대승(奇大升)을 배향하였으며, 백우산 기슭 광곡(너브실) 마을에 있다. 기대승의 장남 기효증이 1607년(선조 40)에 아버지를 추모하여 지었으며 1938년 기대승의 후손에의해 이전·개축되었다. 월봉서원은 당초 고봉을 추모하기 위해 고봉 사후 7년 만인 1578년(선조11)에 낙암(현 신룡동)에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피해를 입고 동천(현 산월동)으로 옮겨서 건립했는데 1868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가 1941년 현위치에 빙월당을 새로 지었다. 이어 1978년부터 사당과 장판각, 내삼문, 외삼문의 건립에 착수, 1981년 모두 준공을 보았다. 빙월당의 당호는 정조가 고봉의 고결한 학덕을 상징하는「빙월설월(氷月雪月)」의 뜻으로 하사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빙월당이 자리 잡은 곳은 백우산 기슭 광곡(너브실)마을의 원 종가터인데 높다란 대지 위에 서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주변은 소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매우 풍치가 아름답고 경내도 조용하다.

* 빙월당의 건물 *

빙월당은 후손에 의해 원래의 건물이 이전되거나 개축되었고, 또한 소실된 건물을 복원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후손에 의해 복원된 여러 건물의 규모는 다음과 같다.

[사당](祠堂) - 정면3칸, 측면2칸반의 팔작집, 정면 반칸은 퇴로 개방되어 있다. 41.98m² (건평 12.7평)

[강당](氷月堂) - 정면 7칸, 측면 3칸의 팔작집이다. 양측 1칸씩은 모두 퇴간(退間)인데 전면과 우측 반칸에는 툇마루를 설치했다. 안쪽으로는 후면 반칸을 포함 좌측 2칸에 온돌방을 꾸미고, 우측 3칸에는 우물마루를 깐 대청을 꾸몄다. 84.29m²(건평 25.5평)

[장판각](藏板閣) - 빙월당 우측에 있는 원래부터 있던 장판각과 좌측에 있는 새로 만든 장판각 2동이 있다. 본래의 것은 정면, 측면 모두 1칸 규모의 맞배집이며, 새 장판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집이다. 2동의 건평은 도합 26.44m²(8평)이다. 새 장판각에 고봉집(高峯集), 논사록(論思錄), 왕복서(往復書), 이기왕복서(理氣往復書)등의 목판(木板) 474매가 보존되어 있다.

[내삼문](內三門) -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 솟을삼문. 13.55m²(건평 4.1평)

[외삼문](外三門) - 내삼문과 같은 솟을삼문. 12.56m²(건평 3.8평) 원래 월봉서원은 1655(효종6)에 사액(賜額)되었고, 사우(祠宇)와 동제(東齊)- 명성제(明誠齊), 서제(西齊) - 존성제(存省齊), 강당(講堂) - 충신당(忠信堂)이 갖추어졌는데 월봉서원의 액호(額號)는 이산로, 나머지 편액은 송준길이 썼던 것인데, 현판들은 현재 장판각에 보존되고 있다.

*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가 기대승에 대하여 *

기대승(1527~1572)은 조선중기 성리학의 대가로서 자는 명언, 호는 고봉이며, 시호는 문헌이다. 광주 소고룡리 송현동(현 광산구 신룡동)에서 성리학자인 기진의 2남으로 태어났다. 이퇴계와 김하서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나 선학을 놀라게 하는 새 학설을 제시하여 존경을 받았다. 사단칠정을 주제로 한 왕복서한을 이퇴계와의 사이에 주고받은 이른바 사칠이기론은 너무도 유명하다. 1549년 사마시을 거쳐 1558년 문과에 급제, 1563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받았고, 종사관(從事官), 집의(執義), 전한(典翰), 우부승지(右副承旨)를 역임했다. 1572년 대사간에 올랐으나 병으로 벼슬을 하직하고 귀행중 45세의 나이로 고부에서 별세했다. 종계변중의 진문을 써서 명(明)나라에 보낸 공로로 1590년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에 추록되고 덕원군(德原君)에 봉해졌으며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追贈)되었다.

* 소유자 - 행주 기씨 문중
* 수량 - 일원
* 시대 - 조선시대
* 규모 - 사당, 빙월당, 장판각(2동), 내삼문, 외삼문


⊙ 장성 황룡 전적


- 홈페이지
http://www.cha.go.kr

- 주소
전라남도 장성군 물뫼길 25 동학농민혁명 황룡전적비

1894년 1월 고부군수 조병갑의 탐학에 시달리던 전봉준을 비롯한 동학농민군은 봉건의 압제와 외세의 핍박을 깨치고자 들고 일어섰다. 마침내 4월 초 전봉준, 손화중, 김개남이 이끈 수천의 농민군은 백산에 모여 반봉건의 제폭구민과 반외세의 척양척왜의 기치를 내걸고 관군과의 전쟁에 나섰다. 4월 6일 밤 농민군은 황토현에서 전라도 감영군과 치열한 싸움을 벌인 끝에 승리했다. 이 싸움은 농민군이 관군과 접전을 벌여 거둔 최초의 승리였다. 이어서 4월 22일 장성의 황룡강 유역으로 진군한 전봉준의 주력부대는 전주에 주둔하던 홍계훈의 경군을 황룡 지역으로 유인하여 또다시 대승을 거두었다.

이 황룡전투는 전봉준의 동학농민군이 전주를 점령하기 위하여 이곳에서 경군과 한 차례 접전을 벌였던 전투로써, 동학농민군이 서울의 정예부대를 격파한 의미있는 전투였다. 그 여세를 몰아 곧바로 전주성을 점령하게 되면서 동학농민군의 요구를 수용한 전주화약이 맺어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까치능선이라고 불리던 이곳 동학격전지가 바로 황룡전적지이다. 동학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동학사상을 일깨우고, 후세에 역사 교육의 장으로 이용될 수 있도록 전국에서 헌수운동을 통해 이곳에 동학기념공원을 조성했다.

* 면적 - 20,338㎡


⊙ 신룡동오층석탑


- 홈페이지
https://www.gwangsan.go.kr/culture/index.php
http://www.cha.go.kr

- 주소
광주광역시 광산구 신룡동

신룡동에서 낙암산(樂菴山)쪽으로 약300∼400m 떨어진 외딴 민가(民家) 옆에 우뚝 솟아 있다. 어느 때부터인지 몰라도 기단부(基壇部)의 중석(中石)과 지대(地臺)석 일부가 파손되고 상층기단의 면석(面石) 이매(二枚)가 결실된 상태였던 것을 1981년 9월 완전히 해체 복원하였다. 이 때 1층탑신 상면 중앙의 사이공(舍利孔)에서 사각방형(四角方形)의 금동사이함(金銅舍利函)과 사이병(舍利甁), 그리고 몇 조각의 목편(木片) ,죽편(竹片) 등의 사이구(舍利具)가 발견되었다. 사이구(舍利具)는 국립광주박물관(國立光州 博物館)에서 보존(保存)하고 있다.

석탑(石塔)의 형식(形式)을 보면 기단부(基壇部)는 이중기단(二重基團)이며 지대석(地臺石)은 4개의 석재(石材)를 결구(結構)하여 하대석(下臺石)을 겸했고, 4면에 귀기둥(隅柱)과 버팀기둥(탱주撑柱)을 각출(刻出)하여 일면(一面)을 이구(二區)로 구분하였다. 그 위로 하대갑석(下臺甲石)을 얹었는데 하대갑석(下臺甲石)은 2매의 판석(板石)으로 짰으며 갑석 윗면은 경미한 경사를 나타내고 1단의 각형괴임을 표현하였다. 상층기단은 4매의 면석과 갑석으로 이루어졌는데 면석(面石)의 4면에는 역시 귀기둥과 버팀기둥이 표출되어 있고 한 장으로 된 갑석(甲石)은 아래 쪽에는 부연(副椽), 위 쪽 중앙(中央)에는 1단 괴임을 만들어 탑신(塔身)을 받치고 있다.

탑신부(塔身部)는 각층마다 옥개석(屋蓋石)과 탑신(塔身)이 각각 한 개의 돌로 만들어 졌는데 1층 탑신은 특별한 조식(彫飾)이 없이 4면의 양쪽 모서리에 귀기둥을 나타냈다. 옥개석 상면의 우동(隅棟)은 뚜렷하고 추녀를 내려와서는 완연하게 되바라졌으며 층급받침은 4단이다. 이처럼 1층부터 3층까지 4단이던 층급받침은 4∼5층에서는 더욱 간화되어 3단으로 줄어들었다. 탑신도 2층 탑신부터는 갑자기 높이가 짧아지면서 5층까지 알맞게 체감되어 5층탑이면서도 전반적으로 안정감을 주고 있다. 상륜부(相輪部)에는 노반(露盤)과 보주(寶珠)가 갖추어져 있으나 석질(石質)과 색감(色感)이 달라 후보(後補)한 것으로 보인다. 이 석탑(石塔)의 형식(形式)을 살펴보면 이중기단(二重基壇)으로 상하층 기단 각면에 귀기둥과 버팀기둥이 있고, 각 옥개석 상면에 탑신을 받는 1단괴임이 있는 등 통일신라시대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으나, 그 고준(高峻)한 형태와 간화된 층급받침 등으로 미루어 고려(高麗) 초기의 탑으로 추정된다.


⊙ 장성문화원


- 홈페이지
http://jangseong.kccf.or.kr/

- 주소
전라남도 장성군 장성읍 문화로 110

장성문화원은 다양한 문화활동을 통해 지역 문화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3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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