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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충청남도 홍성군] 홍양저수지(빼뽀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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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양저수지(빼뽀저수지)


- 홈페이지
https://www.hongseong.go.kr/

- 주소
충청남도 홍성군 금마면 월암리 일대 (금마면)

‘홍양저수지’는 1945년에 준공된 홍성군에서 제일 큰 저수지로 금마면에 위치하고 있다. 모양이 고구마처럼 길쭉하고 주변에 수양버들이 우거져 있어 경관도 아름답다. ‘홍양저수지’는 현재도 농업용수 보호구역이며 어종이 풍부하여 낚시터로도 인기가 많다. 저수지 수변을 따라 4.3km의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으며 대략 1시간 30분 걷기 코스이다. 큰 나무들과 한적한 농촌풍경, 탁 트인 풍경이 펼쳐져 지루한 줄 모른 채 걷게 된다.

 


※ 소개 정보
- 문의및안내
041-633-1141

- 쉬는날
연중무휴

- 신용카드가능정보
없음

- 유모차대여정보
없음

- 이용시간
00:00~24:00

- 주차시설
가능
요금 (무료)











◎ 주위 관광 정보

⊙ 홍주성 천년여행길


- 홈페이지
https://www.hongseong.go.kr/tour

- 주소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조양로 272

홍주성 천년여행길은 지금까지 천년을 한결같이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의 중심을 지켜오며 그 찬란한 천년 역사를 품에 안고 있는 내포의 큰 고을 홍주를 돌아보는 길이다. 홍주성 천년여행길은 희망찬 홍성을 상징하는 고암길과 서민경제의 심장과 같은 장터길, 도심속 답답한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힐링 공간인 매봉재길,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홍주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고스란히 간직한 홍주성길, 근 · 현대를 넘어드는 추억의 골목길로 이루어져 있다.

⊙ 역재방죽공원


- 주소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충절로 925

이곳은 잠사를 위한 얼음창고 및 농업용 저수지로 사용되었으며 군민들의 여름 치기 등 추억이 서린 휴식지로서 현재 근린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역재방죽은 생물종 다양성이 풍부한 오래된 소생물권 습지로서 자 연생태적 가치에 주목을 받고 있다. 생물분포는 9목 27과 60여종 이상의 곤충, 8목 17과 26여종의 조류 27목 43과 86종의 식물(수생식물 6목 6과 7종, 육상식물 21목 36과 79종) 등이 서식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특히 멸종 위기 종 야생식물인 가시연꽃(환경부 지정 식57호,산림청 지정 보호 1순위)은 한반도 최북단 서식지이고 밀적도에서 한국 내 최대 규모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유미 박사, 산림청) 또한 방죽 중심의 개섬은 귀중한 문화자산으로 완결성이 높은 의견(義犬)설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한편 1992년도 충청남도 운전면허시험장으로, 1997년도 홍성청소년수련관 부지로 매립계획이 시도되었으나 시민환경단체들의 노력으로 백지화되었으며 현재 주민들과 함께 역재방죽 생태공원 조성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 철마산 3.1공원


- 주소
충청남도 홍성군 금마면 철마산길 149-26

1919년 독립운동을 했던 184명의 영혼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가 있다. 이 고장 출신 선열의 숭고한 애국정신과 희생정신을 후손들에게 보전하고 건립했다. 철마산 3.1공원은 고려의 충신 최영 장군이 무술을 연마한 곳이기도 다.

⊙ 김좌진장군동상


- 주소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고암리

김좌진장군동상은 장군이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 가납 연대를 섬멸시킬 때의 무장한 위용으로 독립군 대장의 늠름한 기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김좌진 장군은 1919년 북로군정서를 조직하고 사령관이 되었으며, 사관 연성소를 설치하여 독립군을 양성하였다. 31세가 되던 해에는 시베리아로 출전 중이던 일본군 3,000여 명을 화룡현 청산리로 유인하여 1,200여 명을 전사상자로 만들어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이는 대한민국 독립 운동사상 최대의 금자탑을 이룬 전투였다.

⊙ 홍주의병기념탑


- 주소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의사로 79

홍주의병기념탑은 2013년 건립되었다.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산화하신 홍주의병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고인들의 우국충정과 살신성인의 정신을 되살려 후손들을 위한 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고자 건립한 탑이다.
홍주의병기념탑은 하늘, 땅, 사람을 의미하는 기본구도 위에 홍주성과 월계전, 홍성천을 형상화한 계단, 거병 년도 (1895년, 1906년)를 담은 두 개의 탑신, 홍주 의병을 상징하는 인물상과 부조, 홍성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소통하는 구와 문주, 홍주의 병사를 기록한 기념비 등을 조형화하여 홍주 의병의 호국정신을 보여주고 있다.

⊙ 광경사지 석불좌상


- 주소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내법길 81-23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내법리 용주사에 있는 석불좌상이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높이 136㎝, 앉은키 80㎝의 석불좌상으로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원래 홍성읍 대교리(大橋里)의 옛 절터였던 광경사지에 있던 것을 오관리(五官里)의 개인 집 뒤뜰에 안치하였다가 1975년 4월에 현 위치로 옮겼다.
얼굴은 둥글고 양쪽 귀는 긴 편이며 나발(螺髮)의 머리에 육계를 갖추었으나 나발의 조각이 분명치 않고 육계가 적다. 반원형 양 눈썹에 두 눈은 직선에 가까운데 진주로 눈동자를 끼웠던 흔적이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있고 통견(通絹)의 가사는 옷 주름을 표현하였는데, 이 점은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국보)과 비슷한 수법이다. 결가부좌에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수인으로 보아 석가여래 좌상임을 알 수 있으며, 사실적인 얼굴 표정과 간략한 연화좌(蓮華座) 조성 등의 수법으로 미루어 고려 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 홍성 홍주의사총


- 홈페이지
https://www.hongseong.go.kr/

- 주소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의사로 79 (홍성읍)

조선말기(병오년) 홍성 지역에서 있었던 의병 운동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희생된 분들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1905년 일본의 강압에 의해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홍주 지역에서는 1906년(병오년)에 전 이조참판 민종식이 채광묵, 박인기, 이만식, 농민, 유생 구 관리를 중심으로 홍주성에 쳐들어갔는데 당시 홍성 군수 이교석과 이주승도 처음에는 의병 군에 호응할 기미였다가 일본군 다수가 입성한다는 소식을 듣고 성문을 닫고 입성을 막아 부득이 물러난 후 3월 22일에 재차 홍주성에 쳐들어갔으며 5월 19일에 홍주성을 함락시켰다.

그 후 일본군이 5월 25일부터 홍주성의 의병 군을 공격하여 30일부터 본격전이 시작되었으며 그때에 일본군 대포에 의해 조양문이 부서졌고 중과부적으로 의병 수백 명이 전사하여 시체가 대교리 일대의 냇가와 남산 일대에 흩어져 있었다. 1949년 4월 5일 홍성 군수 박주철과 홍성 경찰서장 박헌교가 직원들을 인솔하고 현재 의사총이 있는 부근에서 식수하다가 의외로 많은 유골을 발견하였다. 병오 항일의병 시 전사한 의병 군의 유골이 임시 매장된 것으로 판명되어 충청남도에 그 사실을 보고하고 도비를 지원받아 유골을 모아 이곳에 합장하여 분묘를 조성하였다. 1992년 구백의총(九百義塚)이란 이름이 ‘홍주 의사총’으로 바뀌었으며 매년 5월 30일에 순국 의사에 대한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 홍성 오관리 당간지주


- 홈페이지
http://tour.hongseong.go.kr

- 주소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

절에서는 불교의식이 있을 때 사찰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 두는데, 이 깃발을 다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 하며,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이 당간지주는 홍성읍내의 경작지 한 가운데에 78㎝ 간격을 두고 마주 서 있다.이 일대는 고려시대의 광경사(廣景寺)터로 알려져 있고, 석탑 및 석불좌상 등이 함께 전하고 있다. 전체적인 형태는 위로 오를수록 가늘어지고 위쪽에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홈이 파여 있으며 가운데 깃대는 남아있지 않다. 기둥의 바깥 면에는 세로줄 문양이 새겨져 있고 기둥 머리부분은 둥글게 처리되었다. 두 지주 사이에는 낮은 대(臺)가 놓여 있는데 중앙에 둥근 구멍 하나가 뚫려있어 깃대를 세우던 자리임을 알게한다. 높이가 4.8m이고 다소 무거운 느낌을 주는 이 당간지주는 고려 중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소유자 : 국유
* 관리자 : 홍성군


⊙ 조양문


- 홈페이지
https://www.hongseong.go.kr/

- 주소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아문길 27 (홍성읍)

조양문은 홍주성의 동문이며 홍성군의 관문으로 고종조에 목사 한응필이 홍주성을 석성으로 개축하고 동서남북의 문루도 다시 세웠다. 동문은 조양문 서문은 경의문 북문은 망화문이라 하는데, 대원군이 친필로 하사하였으며 남문은 문루가 없는 홍예문이었다. 북문은 역대 목사들이 문루에서 사형수의 처형을 감시하기도 하였는데, 동학운동(1894) 때는 수백 명의 동학군이 여기에서 처형되었다. 고종 광무 10년(1906) 항일의병이 일어나 일본군과 홍주성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그때의 흔적이 조양문 곳곳에 보인다. 일본인들에 의하여 서문과 북문은 파괴되어 없어지고 조양문 또한 파괴되었으나 부분적인 보수로 퇴락되었던 것을 1975년 문루를 해체 복원하여 옛 모습을 찾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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