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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남도

[경상남도 산청군] 지리산내원자동차야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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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내원자동차야영장


- 홈페이지
https://www.knps.or.kr/

- 주소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 산106-2

지리산국립공원 내원계곡을 끼고 있는 내원자동차야영장은 자동차야영장과 일반야영장의 혼합형으로 만든 캠핑장이다. 모든 시설은 걸어서 2~3분 내에 이용이 가능하고, 야영장 내 주차장은 따로 마련되어 있다. 일반캠핑장 32개소와 카라반 겸용 사이트 5개소, 또 데크 사이트는 작은 사이즈와 중간 사이즈로 나뉘어 11개소와 5개소가 있다. 특이 이곳은 국립공원 야영장임에도 휴양림 같은 분위기를 즐길 수 있다. 숲 속 사이트는 나무테이블이 비치되어 있어 테이블을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사이트 옆으로 흐르는 계곡소리와 폭포도 감상할 수 있다. 숲 속사이트 이용자들의 편의를 위해 수레가 준비돼 있다. 개수대 물은 계곡수를 사용하기 때문에 식수로 쓰려면 반드시 끓여야 한다. 샤워장은 냉수만 사용 가능하고, 유료로 운영되고 있다.


※ 소개 정보
- 개장기간
봄,여름,가을

- 문의및안내
055-972-7775

- 쉬는날
연중무휴 (동절기 폐쇄)

- 신용카드가능정보
없음

- 애완동물동반가능정보
불가

- 유모차대여정보
없음

- 이용시간
14:00~익일13:00

- 주차시설
가능

- 주차요금
무료





◎ 이용요금
비수기 15,000원
성수기 19,000원
※ 성수기 : 5.1.~11.30. / 비수기 : 성수기를 제외한 기간
※ 이용요금은 변동될 수 있으므로 홈페이지 참조 또는 전화 문의 요망



◎ 부대시설
전기,무선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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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 관광 정보

⊙ 덕산사(내원사)


- 홈페이지
http://cafe.naver.com/naewonsa
산청군 문화관광 http://www.sancheong.go.kr/tour/index.do

- 주소
경상남도 산청군 대하내원로 256 내원사

덕산사는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 장당골과 내원골이 합류하는 위치에 절묘하게 자리한 절로 계절마다 느낌이 달라 운치를 더하지만 특히 대웅전 마당의 단풍나무가 물드는 가을에 더욱 멋이 있으며, 그 포근함으로 인해 하룻밤 머물고 싶은 곳이다. 또한 양반집 후원같이 정갈하고 그윽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곳이다.

신라 태종 무열왕 때 무염(無染)국사가 창건하여 덕산사(德山寺)라 하였으나 그 뒤 원인 모를 화재로 전소되어 그대로 방치되다가 1959년 원경(圓鏡)스님에 의해 다시 주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당시 절 이름도 내원사로 고쳤지만, 다시금 덕산사로 부르고 있다.

장당골쪽의 계곡을 따라 숲속 계단을 올라가면 장당골 계곡 맞은 편에 있는 소담한 절을 마주하게 된다. 덕산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에 들어가기 위해 건너야 하는 반야교이다.''반야''란 지혜를 의미한다. 세속의 모든 번뇌를 잊어버리는 지혜를 반야교에서 얻어, 절 어디에서나 들을 수 있는 맑은 물소리와 더불어 천상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하며, 반야교의 가운데 서면 계곡의 찬 기운을 느낄 수 있으며, 흐린 날에는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신비로운 물안개도 감상할 수 있다.

반야교를 지나면 일주문이나 불이문 같은 입구도 없이 양반집 후원같은 경내에 들어서게 된다. 계곡의 물소리로 인해 사찰이 물 위에 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대웅전 앞마당을 단풍나무가 주변에서 둘러싸고 있고, 대웅전을 중심으로 심우당, 비로전, 산신각, 칠성각, 요사채가 있으며 건물의 규모는 한결같이 작다. 보물로 지정된 비로전에 봉안된 석남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과 고려시대에 건립된 덕산사삼층석탑이 있다. 대웅전 앞 계단 위에서 앞마당을 보면 더욱 정겹다. 덕산사에는 풍수와 관련된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온다. 이 절터가 풍수상 명당터라 전국에서찾아오는 관람객으로 큰 혼잡을 이루게 되어 수도하는데 많은 지장을 주게 되었다. 주지스님이 이를 걱정하였더니 어느 노승이 말하기를 ''남쪽의 산봉우리 밑까지 길을 내고 앞으로 흐르는 개울에 다리를 놓으면 해결될 것이다.''하고 홀연히 떠나버렸다.

이튿날부터 대중 스님들이 총동원되어 개울에 통나무로 다리를 놓고, 봉우리 밑까지 길을 낸 다음 모두 쉬고 있는데 돌연히 고양이 울음소리가 세 번 들려왔다. 이상히 여긴 사람들은 무슨 징조인지 궁금하게 생각했다. 그 후 풍수설로 해명하기를 앞에 있는 봉우리는 고양이 혈이고, 절 뒤에 있는 봉우리는 쥐의 혈인데 여기 길을 내고 다리를 놓으니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게 된 것이다. 이런 일이 있고 나자 그렇게 많이 찾아오던 사람들이 점차 줄어들어 스님들이 조용히 수도에 정진할 수 있게 되었지만,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로 절은 전부 불타 버리고 말았다.

절이 불타고 있을 때 이 절에 기거하던 세 분의 장사스님이 개울에서 커다란 통나무에 물을 길어 불을 끄는데 어찌된 영문인지 왼쪽에서 길어 쏟는 물은 오른편 개울에 떨어지고, 오른편에서 쏟은 물은 왼편 개울에 떨어지며, 앞에서 쏟은 물은 뒷산 봉우리에 떨어져 결국 불길을 잡지 못하고 절이 전소되었다고 한다.


⊙ 대포숲


- 주소
경남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

대포숲은 경남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에 자리 잡고 있다. 내원사 계곡과 대원사 계곡의 물이 합류하는 지점에 있는 자연 발생유원지다. 물이 깨끗하고 수량이 풍부하며, 물가에 울창한 숲이 있어 여름이면 피서객들로 붐빈다. 물 깊이가 얕은 곳부터 어른 키만큼 깊은 곳까지 다양해서 남녀노소 누구나 물놀이를 즐길 수 있다.

⊙ 내원사계곡


- 주소
경남 산청군 삼장면 대포리

천성산 기슭에 위치한 내원사 주변 계곡으로 북동쪽으로는 정족산, 남쪽으로는 원적산, 남동쪽으로는 천성산이 있으며, 그 사이에 있는 여러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용연천과 상리천이 되어 양산천으로 흘러들고 있다. 내원사계곡은 예부터 소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사시사철 맑고 깨끗한 물이 흘러 신비한 계곡으로 불리는 곳으로, 계곡 곳곳에는 삼층 바위가 첩첩이 서 있으며 절벽에 '소금강'이란 글자가 뚜렷이 새겨져 있고, 병풍 모양으로 바위가 길게 뻗어져 있어 병풍바위라 불리는 곳도 있다. 여름에는 피서객이 봄, 가을, 겨울에는 등산객이 많이 찾고 있으며, 이곳 산에서 채취하는 도토리로 만든 묵은 맛도 좋을 뿐 아니라 건강식품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내원사계곡 주변 관광지로는 통도사, 홍룡폭포, 통도환타지아, 통도파인이스트컨트리클럽, 해운청소년수련원 등이 있다. 경부고속국도 통도사 IC를 지나 국도 35호선에서 동쪽 용연리 내원교로 이어진 지방도 1028번을 타고 따라가면 내원사계곡이 나온다.

⊙ 덕천서원(산청)


- 홈페이지
http://www.sancheong.go.kr/tour/index.do
http://www.cha.go.kr

- 주소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남명로 137

이 서원은 1576년(선조 9)에 사림(士林)들이 남명 조식(南冥 曺植)의 학덕(學德)을 기리기 위하여 그가 강학(講學) 하던 자리에 세운 것이다.
1609년(광해군 원년)에는 사액(賜額)을 받아 사액서원(賜額書院)이 되었으나, 대원군(大院君) 때 철폐되었고, 그 후 1930년대에 다시 재건되어 오늘에 이른다. 최근엔 아름다운 배롱나무꽃을 보기 위해 방문객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 산천재 남명매


- 홈페이지
산청 문화관광 http://www.sancheong.go.kr/tour/index.do

- 주소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남명로 310-8 (시천면) 산천재관리사무소

지리산 천왕봉 아래 산청군 시천면 사리에 있는 산천재의 뜰에는 남명 조식(曺植, 1501~1572) 선생이 61세이던 명종 16년(1561)에 손수 심은 매화나무가 있다. 산천재는 선생이 학문을 닦고 연구하던 곳으로 명종 16년(1561)에 세웠고, 순조 18년(1818)에 고쳐졌다. 규모는 앞면 2칸, 옆면 2칸이다. 남명 선생은 영남의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룰 만큼 호남 학파의 수장이다. 평생 벼슬에 나가지 않았지만 죽어서 사간원(司諫院)과 대사간(大司諫)에 이어 영의정에 추서된 위인이다. 선생은 1501년(연산 7년)에 경상도 삼가현에서 태어나 벼슬길에 나아간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주하였다가 그 후 의령, 김해, 삼가 등지에서 거주하였다. 선생은 61세가 되던 해에 산청의 덕산으로 이주해 그곳에 서실을 짓고 산천재라 이름하였다.

⊙ 송하마을


- 주소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송하중태길 23

송하마을은 평평하고 근방에서 가장 넓은 논이 펼쳐지는 마을로, ‘천평(川坪)들’이라고 하는데, 다른 말로 ‘금환락지(金環洛池)’라 부르고 있다. 금환락지는 옛 선인들이 최고의 명당자리라고 여겨왔던 곳을 부르던 이름이다. 지리산 둘레길 중에서는 구례 운조루가 금환락지라고 불린다. 이 들판을 둘러싼 옥녀봉은 옥녀가 하늘로 올라가며 금가락지를 빠뜨렸다는 전설이 있다. 덕천강 하류 쪽에서 울며 마을로 들어와도 금환락지를 지나면 풍요와 기쁨으로 웃으며 나간다는 말이 전해진다.

⊙ 구곡산


- 홈페이지
산청 문화관광 http://www.sancheong.go.kr/tour/index.do

- 주소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지리산대로

글자 그대로 아홉계곡이 있다고하여 구곡산이다. 구곡산은 황금능선의 들머리로서 능선에 서면 지리산 천황봉이 손에 잡힐듯이 가까워 보이며, 구곡산 정상에 서면 장괘한 지리산 주능이 가장 가까이 조망되고 봄이면 철쭉, 가을이면 단풍등 후회없는 산행이 된다.

지리산 황금능선 코스는 새로운 산길이 뿜어내는 신선함과 영산이 주는 신령스러움이 한꺼번에 느껴지는 등반로이다. 이 길은 천왕봉 코밑까지 훨씬 가깝게 다가서는 데다 무성한 산죽 구간을 탐험하듯 헤쳐가는 산행 재미가 꽤 빼어나다.

* 산높이 961m

⊙ 산청 조식 유적


- 홈페이지
http://www.sancheong.go.kr/tour/index.do

- 주소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사리

조선 중기의 유명한 유학자인 남명 조식의 유적이다. 조식 선생은 많은 벼슬이 내려졌으나 모두 거절하고,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평생을 보냈다. 이 유적은 두 곳으로 나뉘는데, 사리(絲里)에는 산천재, 별묘, 신도비, 묘비가 있고, 원리(院里)에는 덕천서원과 세심정이 있다. 산천재는 선생이 학문을 닦고 연구하던 곳으로 명종 16년(1561)에 세웠고, 순조 18년(1818)에 고쳐졌다. 규모는 앞면 2칸, 옆면 2칸이다. 덕천서원은 선조 9년(1576)에 세웠고, 앞면 5칸, 옆면 2칸의 현재 건물은 1926년에 고쳐 지은 것이다. 세심정은 선조 15년(1582)에 처음 세웠다.

[전문설명]

조식유적(曺植遺跡)은 조선중기(朝鮮中期)의 위대(偉大)한 유현(儒賢)이며 뛰어난 실천(實踐) 도학자(道學者)였던 남명선생(南冥先生)이 만년(晩年)에 강학(講學)하던 산천재(山天齋)를 비롯하여 사후(死後) 그를 모시던 덕천서원(德川書院) 등을 일괄(一括) 지정(指定)한 유적지(遺跡地)이다.남명(南冥) 조식(曺植)(燕山君 7년(年) 1501∼선조(宣祖) 5년(年), 자건중(字楗仲), 별호산해(別號山海), 본관창녕(本貫昌寧))은 남다른 재질(才質)과 용공(用工)(절제(節制))으로 일찍부터 학덕(學德)을 갖추어 대성(大成)하였으나 사환(仕宦)(벼슬)에는 나아가지 않고, 평생(平生)동안 선비와 처사(處士)(산림(山林))로써 굳건히 일관(一貫)하였다. 38세 때 헌릉참봉(獻陵參奉)을 시작으로 여러 번 벼슬이 제수(除授)되고 왕(王)이 면대(面對)하기를 청(請)(징소(徵召)) 하였으나 매번 상소(上疏)(봉사(封事))로써 의견(疑見)을 개진(開陣) 하였을 뿐 나아가지 않았고, 오직 66세(명종(明宗) 21, 1566)되던 해 10월(月) 초(初)에 상경(上京)하여 왕(王)을 잠시(暫時) 뵈옵고는 곧 귀향(歸鄕)하였다.

사후(死後) 광해군(光海君) 7년(年)(1615)에 영의정(領議政)에 추증(追贈)되고 시호(諡號)를 문정(文貞)이라 하였다.경상도(慶尙道)의 북(北)(안동(安東))과 남(南)(진주(晋州))에서 동년생(同年生)으로 다같이 불세출(不世出)의 홍유(鴻儒) 석덕(碩德)에 이른 퇴계이황(退溪李滉)이 연구(硏究)와 사색(思索)과 저술(著述)을 통해 천도(天道)(이치(理致))를 밝힘에 보다 힘썼다면, 남명(南冥)은 반궁(反窮)(자성(自省))과 체험(體驗)과 실천(實踐)을 통해 의리(義理)의 숭상(崇尙)(시폐(時弊)의 구제(救濟))에 보다 힘썼다고 할 수 있다.남명(南冥의 학문(學問)은 스스로 강조(强調)한 바와 같이 경의(敬義)로써 대표(代表)되는데 경(敬)은 안으로 궁리명선(窮理明善)하는 용공(用工)이며 의(義)는 경(敬)한 바를 밖에서 실행(實行)하는 용단(勇斷)으로도 이해(理解)될 수 있을 것 같다. 이같이 고고(孤高) 강의(剛毅)한 기상(氣象)을 깔고 있는 남명(南冥)의 학풍(學風)은 최영경(崔永慶), 정인홍(鄭仁弘), 정구(鄭逑), 김우옹(金宇옹) 등 발군(拔群)의 여러 제자(弟子)들을 통해 후일(後日)에 이르도록 퇴계(退溪)나 율곡학파(栗谷學派)와는 구별(區別)되는 독특(獨特)한 학맥(學脈)으로 전승(傳承)되었다.

특히 임진왜란(壬辰倭亂)에 있어서는 주지(周知)하는 바와 같이 곽재우(郭再祐) 김면(金沔) 정인홍(鄭仁弘)등 경상우도의병(慶尙右道義兵)의 주축(主軸)이 이 문하(門下)에서 군기(群起)하여 국난극복(國難克服)에 크나큰 공덕(功德)을 세웠다. 그러나 한편으로 고제(高弟) 정인홍(鄭仁弘)이 그 후(後) 대북파(大北派)의 영수(領袖)로서 광해군(光海君) 정권(政權)과 연계(連繫)되고 처형(處刑)된 까닭에 조선후기(朝鮮後期)는 물론(勿論), 금일(今日)에 있어서도 남명(南冥)에 대한 이해(理解)와 평가(評價) 및 천양(闡揚)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실정(實情)이다.남명(南冥)은 현(現) 합천군(陜川郡) 삼가면(三嘉面) 토동(兎洞)(외토리(外吐里))에서 생장(生長)하고, 30세(歲)되던 중종(中宗) 25년(年)(1530)에 처향(妻鄕)이던 현(現) 김해군(金海郡) 대저면(大渚面) 탄동(炭洞)(주박동(主薄洞))으로 옮기어 산해정(山海亭)을 지어 경의(敬義)공부에 몰두(沒頭)하였다.

48세(명종(明宗) 3, 1548)에 다시 향리(鄕里)(토동(兎洞))로 돌아와 학복당(鶴伏堂)과 뢰용정(雷龍亭)을 지어 찾아드는 많은 학자(學者)(문인(門人))을 가르쳤고, 61세 되던 명종(明宗) 16년(年)(1561)에 이곳 사리(絲里)(사륜동(絲綸洞), 당시는 진주목(晋州牧) 덕천동(德川洞))로 재차(再次) 옮겨 산천재(山川齋)를 지어 제생(諸生)에게 강학(講學)하던 중(中) 11년(年) 후(後)에 서거(逝去)하였다. 그러므로 현재(現在) 김해(金海)의 산해정(山海亭), 삼가(三嘉)의 뢰용정(雷龍亭)(경북문화재자료(慶北文化財資料) 등도 남아 있으나 만년(晩年)에 거처(居處)하던 이곳 일대(一帶)가 남명(南冥)의 유적지(遺跡地) 중 가장 대표적(代表的)인 곳이다.이같은 실정(實情)을 고려(考慮)하여 1984년(年) 1월(月)에 이르러 이곳 유적(遺跡)의 각 건물(建物)이나 석물(石物)이 갖는 문화재적(文化財的) 평가(評價)보다도 그 전체(全體)를 일괄(一括)하여 남명(南冥)선생의 학덕(學德)과 교육(敎育)(강학(講學))을 오늘날에 되살려 숭앙(崇仰) 천양(闡揚)하는 상징적(象徵的) 중심체(中心體)(기념물(紀念物))로써 사적(史蹟)으로 지정(指定)하였다. 조식유적(曺植遺跡)은 크게 산천재권역(山天齋圈域)(사리(絲里))와 약 1km 서방(西方)에 떨어져 있는 덕천서원권역(德川書院圈域)(원리(院里))으로 나뉘어지고, 전자(前者)는 다시 강변(江邊)에 자리한 산천재(山天齋)와 그 외(外)의 유적(遺跡)이 진주(晋州)∼지리산간대로(智異山間大路)로 인(因)해 양분(兩分)되어 있다.


⊙ 문수암 (산청)


- 홈페이지
문수암 (산청) http://munsuam.com
☞ 템플스테이 보러가기

- 주소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마근담길 173-17

지리산 동쪽에 위치하여 지리산 천왕봉이 바라다 보이는 문수암은 대한불교 조계종 12교구 해인사 말사로서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산청 문수암 석가 영산회 후불탱을 소장하고 있는 절이다. 절 아래로는 지리산 둘레길 제8코스가 지나가며, 길을 따라 지리산 태극종주를 할 수 있다. 계곡물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휴식할 수 있고, 부처님의 법음을 느낄 수 있는 아담한 전통한옥 사찰이다. 숙박 시 정갈한 사찰음식을 체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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