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경상북도 울진군] 불영계곡캠핑장

대한민국 레포츠 정보 2026. 3. 9. 1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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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영계곡캠핑장


- 홈페이지
http://bycamping.co.kr/

- 주소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불영계곡로 2758

‘불영계곡 캠핑장’은 경북 울진군 울진읍에 자리 잡고 있다. 캠핑장이 계곡에 있어서 여름철 피서지로 안성맞춤이다. 캠핑장에는 오토캠핑, 일반 캠핑, 글램핑 사이트가 마련되어 있다. 글램핑 객실 내부에는 침구류를 비롯해 TV, 개수대, 테이블 등이 갖추어져 있으며 빙문자들이 캠핑장 이용에 불편함이 없도록 넓은 주차장도 구비하고 있다. 캠핑장은 사계절 내내 주중 주말 모두 운영한다.

 


※ 소개 정보
- 문의및안내
0507-1496-1091

- 쉬는날
연중무휴

- 이용시간
14:00~익일11:00











◎ 주위 관광 정보

⊙ 불영계곡 (경북 동해안 국가지질공원)


- 홈페이지
https://geotourism.or.kr

- 주소
경상북도 울진군 울진읍 불영계곡로 2758

불영계곡은 울진군 서면 하원리부터 근남면 행곡리까지 이어지는 약 15㎞의 긴 계곡이다. 굽이진 계곡과 특이한 형태를 가지는 암석(부처바위, 사랑바위)이 어우러져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계곡 내에는 천년고찰 불영사가 있는데 맑은 물에 부처님 얼굴이 비쳤다 하여 지어진 이름으로 불영계곡도 여기서 유래했다. 맑고 깊지 않은 수심과 빠르지 않은 유수로 가족단위 휴가객이 많이 찾는 곳으로, 울진군에서는 피서철에 한하여 안전요원을 배치하고 있다. 주변에는 캠핑이나 글램핑을 즐길 수 있는 시설이 있어 여름 휴가를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20억 년 전에 만들어진 편마암으로 이루어져 있다. 편마암은 땅속 깊은 곳에서 아주 높은 열과 압력을 받아 변형된 암석으로, 이러한 편마암이 드러나게 된 것은 동해로 흘러나가는 계곡물이 오랜 시간 편마암 위의 돌을 깎아냈기 때문이다. 불영계곡의 편마암에는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지질작용들의 흔적이 잘 보존되어 있어 환경부로부터 2017년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받았다.

⊙ 불영사(울진)


- 홈페이지
http://bulyoungsa.kr

- 주소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불영사길 48

울진군 천축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불국사의 말사로, 진덕여왕 5년(651)에 의상대사가 세운 사찰이다.
의상대가 동해로 향하고 있던 중 계곡에 어린 오색의 서기를 발견하고 가 보니 연못 안에 아홉 마리의 용이 있었다. 이에 도술로 가랑잎에 ‘火’ 자를 써서 연못에 던지니 갑자기 물이 끓어올라 용들이 견디지 못하고 도망을 쳤는데 그 자리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그 뒤 의상대가사 다시 불영사를 방문했을 때 한 노인이 ‘부처님이 돌아오시는구나’라고 하여 불귀사라고도 불렸다. 창건 이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했는데, 1396년(태조 5)에 나한전만 빼고 모두 소실된 것을 이듬해에 소설이 중건했다. 임진왜란 때 다시 영산전만 남고 모두 전소된 것을 1609년에 성원이, 1701년에 진성이, 1721년에 천옥이 중건했다. 그 이후 약 100여 년간 도량이 많이 쇠락해진 채 신라 전통 고찰이라는 명맥으로만 유지되어 오다가 1991년 회주 심전 일운 스님이 5년간의 대만 유학을 마치고 불영사에 오면서부터 동해 일원의 최대 비구니 참선도량으로 변모했다.
회주 심전 일운 스님은 일주문을 신축하고 대웅전을 중수 복원하면서 1994년 대웅보전과 후불탱화가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천축산을 끼고 있는 불영사계곡은 생태보호지역이며, 요즘 보기 드문 560여 종의 식물의 자생하고 있다.

⊙ 고산서원(울진)


- 주소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주천대길 27-6

고산서원은 경상북도 울진군 구미마을에 있었던 조선시대 문신 임유후, 김시습, 오도일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1628년 임유후가 이곳에 내려와 고산에 정자를 짓고 20여 년간 제자를 가르치고 학문을 연구하였다. 그의 사후 제자들이 임유후를 추모하기 위해 고산사를 건립하였다. 그 뒤 이곳의 현령으로 부임한 오도일은 김시습이 자주 다녀간 행곡리주천대에 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동봉별묘를 세우고 구암사라 하였다. 오도일이 죽은 뒤 1715년 고산이라는 사액을 받고 고산서원으로 승격되어 임유후, 김시습, 오도일을 합향하게 되었다. 고산서원은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을 담당하던 중에 훼철되었고 그 후에 다시 복원되지는 못했다. 위패는 땅에다 묻었으며 현재 서원터에는 유허비만 남아있다. 이 서원이 훼철되기 전 경내 건물로는 고산사, 강당, 신문, 동재, 서재 등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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