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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

[충청남도 보령시] 진죽 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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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죽 저수지


- 청소면사무소
041-930-3606

- 주소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송덕신송길 (청소면)

진죽 저수지는 충청남도 보령시에 위치해있다.
연중 유명 포인트인 우측 상류에서 제방에 이르는 수초대와 좌측 상류의 송암동 마을 얕은 수초 밭에서
25~30cm 급의 붕어들을 다량으로 낚을 수 있는 곳이다. 덕분에 낚시꾼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 소개 정보
- 문의및안내
보령관광안내소 041-932-2023

- 신용카드가능정보
없음

- 애완동물동반가능정보
없음

- 유모차대여정보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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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 관광 정보

⊙ 보령 청소역


- 홈페이지
http://www.brcn.go.kr
http://www.cha.go.kr

- 주소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청소큰길 176 (청소면)

청소역은 장항선의 철도역이다. 청소역사는 장항선에서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역사로서,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건축적·철도역사적 가치가 큰 것으로 평가되어 등록문화제 제305호로 지정되었다. 장항선은 본래 사설(私設)의 조선경남철도주식회사(朝鮮京南鐵道株式會社)에 의하여 충남선(忠南線)이라는 이름으로 천안-온양 사이가 1922년 6. 1일 개통되고, 1931년 8월 1일에 전구간 개통되었다. 1946년 5월 사설철도의 국유화정책으로 국유화되었고, 1955년 6월에 장항선이라고 개칭하였다. 인근에는 온양/도고(道高)등의 온천이 있고, 또 예산/홍성/광천/대천 등의 주요 지방도시를 연결하여 충남 남서부 지방 교통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청소역은 1929년 역원배치 간이역으로 영업을 개시하여 1958년 9월 보통역으로 승격한 후 1961년에 지어진 벽돌조 역사이다. 원래의 명칭은 인근마을의 이름을 따서 “진죽역”으로 불렀지만 후에 “청소역”으로 변경되었다. 장항선에서 남아있는 역사 중에 가장 오래된 역사로 현재 간이역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전쟁 이후 근대간이역사의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주변에 오서산을 비롯하여 오천항, 충청수영성 등의 관광지가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 스칸디캠프팜


- 홈페이지
http://www.campfarm.kr

- 주소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송덕신송길 229-42

스칸디캠프팜은 충남 보령시 청소면에 자리 잡고 있다. 보령시청을 기점으로 20㎞가량 떨어졌다. 자동차를 타고 충서로, 송덕신송길을 번갈아 달리면 닿는다.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은 30분 안팎이다. 이곳은 오천항을 비롯해 남당항, 대천항 등 서해의 유명 항구와 인접한 곳에 터를 잡았다. 이 덕분에 캠핑과 더불어 서해 여행을 즐기고자 이곳으로 모이는 이들이 많다. 캠핑장은 북유럽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모델로 삼아 조성했으며, 일반야영장 38면을 마련했다. 사이트 바닥 형태는 잔디 19면, 파쇄석 4면, 데크 15면으로 이뤄졌다. 사이트 크기와 개수는 가로 8m 세로 8m 22면, 가로 8m 세로 10m 16면이다. 캠핑장은 주말 운영을 원칙으로 사계절 내내 문을 연다. 예약은 온라인 실시간으로 가능하다.
캠핑장 인근에 오천항 등의 항구와 국립오서산자연휴양림 등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항구 방면으로 나가면 싱싱한 해산물도 맛볼 수 있다.

⊙ 선림사(보령)


- 홈페이지
보령시 문화관광 http://www.brcn.go.kr/tour.do

- 주소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충청수영로 521-64

선림사는 보령시 오산면 소성리 산 5번지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이다. 선림사는 서해 바닷가 쪽 큰 산 냇골 동쪽, 이른바 ‘싱기댕이’라고 부르는 곳에 위치하고 있다. 사찰의 주위는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여 있고 서해안이 가까이에 있어 멀리 바다가 조망되는 곳이다. 절의 돌 틈에서 나오는 약수는 머리가 맑아지게 하여 감로수라고 알려져 있다. 더욱이 이곳에는 관음조가 유난히 많고 갖가지 새들의 보금자리이기도 하여 성지 다운 도량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한편 선림사는 정절을 상징하는 도미부인의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는 사찰이기도 하다. 백제 개로왕 때의 도미에게는 아름답고 부덕이 있는 부인이 있었는데, 개로왕이 그녀를 궁녀로 삼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개로왕이 도미에게 그녀를 시험하려는 내기를 하였으나 도미의 아내가 교묘하게 위기를 모면하였다. 이에 속은 것을 알게 된 개로왕이 크게 노하여 도미에게 죄를 씌어 장님을 만들어 작은 배에 태워 띄워 보냈다. 도미의 아내 또한 마찬가지로 강가에서 통곡하다가 빈 배를 타고 천성도(泉城島)에 이르러 남편을 만나 천신만고 끝에 고구려 땅에 이르러 잘 살게 되었다. 이러한 선림사에는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만큼이나 애틋한 도미부인의 설화가 전해오는 곳이다. 서해안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광 좋은 곳에 널찍하고 정갈하게 가꿔진 사찰이다. 오랜 옛이야기도 오늘의 선림사에서는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는 풍경소리와 함께 들려오는 현재의 이야기가 되어 듣게 된다.


⊙ 김좌진장군묘


- 홈페이지
http://www.brcn.go.kr

- 주소
충청남도 보령시 청소면 김좌진로 200 (청소면)

독립운동가인 백야(白冶) 김좌진(1889∼1930) 장군의 묘소이다.홍성의 부유한 농가에서 태어난 장군은 개화사상이 투철하여 15세 때 집안의 노비문서를 불태우고 논밭을 나누어 주었다. 또한 1905년 호명학교를 설립하여 문맹퇴치에 앞장섰으며, 1913년에는 군자금을 모금하다 3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다.1917년 만주로 건너가 대한광복단에 가입한 이후 북로군정서의 사령관이 되어 독립군을 훈련시켰으며, 이를 기반으로 청산리에서 일본과 전투를 벌여 독립운동사상 최대의 승리를 이루었다.조국광복을 위해 노력했던 장군은 1930년 공산주의자 박상실에 의해 암살 당했다. 암살 직후 만주땅에 묻혔다가 아내 오숙근 여사가 1940년 장군의 유해를 밀감상자로 위장해 비밀리에 홍성군 서부면 이호리에 안장하였다. 그 후 1957년 부인이 타계하자 아들 김두한이 현 위치에 합장하였다. 현재 묘역에는 뒤편으로 담장이 설치되어 있으며, 봉분은 아랫부분에 둘레석을 둘렀다. 봉분 앞에는 상석과 장명등(長明燈:무덤 앞에 세우는 돌로 만든 등)이, 옆에는 묘비가 있으며, 좌우에는 마(馬)석상 한 쌍이 세워져 있다.

* 수량/면적 - 25,344a㎡
* 시대 - 일제강점기
* 소유자 - 안동김시 문증


⊙ 보령방조제


- 홈페이지
보령시문화관광 http://www.brcn.go.kr/tour.do

- 주소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소성리

* 요트가 있는 풍경, 보령방조제 *

충남 보령시 오천면 충청수영로 소성삼거리에서 천북면을 잇는 방조제는 육지와 육지 사이의 바다를 거침없이 가로지른다. 갓길이 없어 방조제에 주차할 수 없는 도로지만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방파제를 따라 걸어봄 직하다. 서해 쪽으로 오천항 외에 천북마리나가 자리해 정박한 요트들이 이국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인근 천북면은 굴이 특산물인 만큼 굴요리로 한끼 식사를 삼아도 좋다.


⊙ 보령성곽&보령관아문


- 홈페이지
http://www.brcn.go.kr/tour.do

- 주소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보령리

* 보령성곽 *

성은 적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흙이나 돌로 높이 쌓아올린 큰 담이다. 이 성은 고려 말에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여 쌓은 봉당성(혹은 고남산성이 있던 곳에서 동쪽으로 약 400m 떨어진 위치에 1430년(세종 12년)에 이미 있던 성을 보강하여 쌓아 만든 것이다.성을 쌓은 방법은 안팎 양면을 돌로 쌓아 올렸고, 남문 터의 왼쪽과 오른쪽을 제외하고 나머지 성벽은 바깥쪽만 돌로 쌓아 올렸다. 성의 규모는 둘레 630여m, 높이 3.5m이고, 성에는 적대(성벽에 달라붙은 적을 측면에서 공격하던 곳) 8개소, 남ㆍ북ㆍ동문 3개소, 우물 3개소 등이 있었다. 1432년에 제민당ㆍ공아 ㆍ병기고 등 140여칸 규모의 건물을 지었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과 한말 의병전쟁 등을 거치면서 파손되고, 남문인 해산루 옆 성벽 약 70m와 북쪽 성벽 약 360m만이 보존되어 있다.

* 보령 관아문 *

조선시대 보령현의 외곽에 쌓았던 보령읍성의 남문 문루 건물로, 세종 13년(1431)에 현감 박효성이 지은 것이라고 전한다.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팔작지붕집이다. 1층은 양편의 기둥을 성벽 위에 걸쳐 세워 성곽의 일반 문루처럼 가운데 1칸만 통행하도록 되어있다. 기둥과 같이 긴 주춧돌 위에 원기둥을 세웠으며, 2층은 누각을 설치하고 간단한 난간을 사방에 둘렀다. 건물의 앞면에 ‘해산루(海山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중종(재위 1506∼1544) 때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의 친필이라고 한다.


⊙ 오천향교


- 홈페이지
http://www.brcn.go.kr

- 주소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향교길 45-26 (오천면)

1901년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현존하는 건물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37호로 지정되어 있는 대성전뿐이며, 부속건물은 없다.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경장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소장전적은 필사본인 『청금록(靑衿錄)』과 『서재유안(西齋儒案)』 등이 있다. 향교의 운영은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 명이 담당하고 있다.


⊙ 광천토굴새우젓단지


- 주소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읍 광천로 91

* 토굴에서 숙성시킨 최고의 새우젓, 광천토굴새우젓단지 *

충남 홍성군 광천읍 광천로 응암포 일원은 광천토굴새우젓단지다. 광천의 새우젓은 그 역사가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천로와 나란한 새우젓 가게들은 그 후손이다. 새우젓 숙성 방법도 세월을 거듭하며 한층 발전했다. 새우젓은 어느 지역에서 어떻게 숙성시키느냐에 따라 맛이 달라지는데 광천에서는 토굴을 이용한다. 일제강점기 마을 뒷산에 뚫은 광산이 남아 굴에서 새우젓을 숙성시키자 감칠맛이 살아났다. 현재 새로 뚫은 토굴까지 40여 개의 크고 작은 토굴이 존재한다. 구매자가 토굴을 직접 방문해 새우젓을 살 수 있으니 자연스레 새우젓 토굴체험이 이뤄진다. 전국 새우젓 생산량의 약 60%를 차지한다. 매년 10월에는 광천토굴새우젓·재래맛김 대축제가 열린다.


⊙ 보령향교


- 홈페이지
http://www.brcn.go.kr
문화재청 http://www.cha.go.kr

- 주소
충청남도 보령시 주포면 향교말길 45 (주포면)

1723년(경종 3)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중등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을 비롯하여 5채의 부속건물이 있다.1868·1964·1967년에 각각 중수하였으며,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4현(宋朝四賢),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다. 그러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이 향교의 대성전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으며, 현재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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