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강원도

[강원도 원주시] 파크밸리골프클럽

반응형

파크밸리골프클럽


- 홈페이지
파크밸리 골프클럽 http://www.parkvalley.co.kr

-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소초면 바우실길 281

국립공원 치악산 기슭에 자리잡아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50만평, 18홀의 환상코스의 골프장이다.바쁜 일상에 짓눌린 골퍼들의 가슴을 시원하게 씻어 내리는 천혜의 조망아래 환상적으로 설계된 18홀의 코스는 진한 감동과 더불어 다시 찾고 싶은 여운을 남겨 준다. 여성적인 섬세함이 돋보이는 파크코스는 자연의 쾌적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어 힐링 라운딩의 묘미를 더해 주고 있으며,남성적인 웅장함이 살아있는 밸리코스는 자연을 향한 도전과 극복의 성취감을 맛볼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 소개 정보
- 문의및안내
예약문의 033-744-4000

- 쉬는날
연중무휴

- 신용카드가능정보
없음

- 애완동물동반가능정보
없음

- 예약안내
홈페이지 : http://www.parkvalley.co.kr
전화 문의 : 033-744-4000

- 유모차대여정보
없음

- 주차시설
주차 가능





◎ 코스안내
길이 - 18홀 정규 대중골프장 (6,691 yard)



◎ 이용요금
카트료 88,000원
캐디피 150,000원
※ 자세한 요금은 홈페이지 참조



◎ 부대시설
클럽하우스, 스타트하우스, 그늘집, 레스토랑, 프로샵





강원_원주_파크밸리골프클럽02강원_원주_파크밸리골프클럽03강원_원주_파크밸리골프클럽04강원_원주_파크밸리골프클럽05



◎ 주위 관광 정보

⊙ 흥양3기


- 홈페이지
https://www.wonju.go.kr/tour/index.do

-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소초면 흥양리

* 흥양이 자랑하는 돌 세 개, 흥양3기 *

흥양3기는 원주시내에서 4km 떨어진 곳에 있으며, 첫째 것은 자식을 얻기 위해 치성을 드리는 여자바위, 둘째 것은 소의 머리를 떠오르게 하는 쇠세바위이며, 세 번째 것은 크기는 작지만 설악산의 흔들바위와 비슷한 흔들바위이다. 이 세 바위는 흥양이 자랑하는 명물이라고 한다.

* 흥양3기가 있는 흥양리 *

흥량리는 대부분 지역이 평지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농촌으로 동쪽은 치악산 줄기인 삼봉과 투구봉으로 막혀 있고 남쪽은 장양천이 흐른다. 근처에 사래울소류지, 하초구소류지, 황골소류지가 있다. 자연마을로 돌모루, 뜀바우, 사래울, 살여울, 새두둑 등이 있다.


⊙ 부흥사지 석탑재


- 홈페이지
https://www.wonju.go.kr/tour/index.do

-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소초면 흥양리

탑신에는 양우주가 있으며 옥개받침은 4단이다. 기단 갑석의 상면은 합각선이 뚜렷하다. 이 탑재의 신상 조각과 탑신의 짜임으로 보아 고려 초에 세운 것으로 짐작된다. 탑신석의 높이가 17㎝인 점으로 보아 상층부의 탑신으로 추측되며, 특히 상층 기단 면석에 있는 신상이 원형 두광을 갖추고 있어 눈길을 끈다. 비록 석탑이 완전하지 않고 부재 몇 개에 불과하지만, 기단부의 조각이 눈길을 끄는 탑으로서 원주 지역의 불교유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한다. 즉, 이 팔부신중상은 각 면에 양우주와 1탱주가 있어 1면에 2구씩의 신상을 배치한 것이다.


⊙ 수암리 마애삼존불상


- 홈페이지
https://www.wonju.go.kr/tour/index.do

-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소초면 수암리

강원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수암리 마애삼존불상은 수암리 절터로 들어가는 입구 오른쪽에 규모가 큰 바위가 있는데, 화강암이며 표면이 거칠다. 바위 표면에는 마애삼존불상이 전체적으로 비례가 뛰어나게 선각되어 있다. 불상의 크기는 본존상이 대좌와 두광을 포함하여 높이 150㎝, 우협시보살상이 두광을 포함하여 높이 165㎝이다. 양 어깨에 걸친 옷자락에는 굵은 선으로 표현된 옷주름이 보인다. 손은 파손이 심하여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왼손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고 있는 것으로 보아 비로자나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비로자나삼존불 형식과 긴 하체의 표현은 통일신라 후기의 대표적인 양식이다. 이로 보아 이 불상은 통일신라 후기의 전통을 계승한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보인다.


⊙ 구룡사


- 홈페이지
http://www.guryongsa.or.kr

-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소초면 구룡사로 500

신라 문무왕 8년(668)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대웅전 자리에 9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 연못을 메우고 사찰을 창건하여 구룡사(九龍寺)라 하였으나, 조선 중기에 거북바위 설화와 관련하여 현재의 명칭인 구룡사(龜龍寺)로 개칭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치악산구룡사사적』에 따르면 신라말의 고승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는 강희45년 글자가 새겨진 와당이 출토되어 숙종 32년(1706)에 구룡사가 중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 앞 좌우에는 서상원과 보광루, 적묵당, 심검당의 승사가 있으며 이밖에도 원통문, 국사단, 사천왕문, 범종각, 응진전 등이 있다. 절 입구에는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부도군이 있고, 또 구룡사의 전설을 말해주는 거북바위와 폭포아래에 용소가 있다. 또한 조선시대에 만든 황장금표가 있는데 이것은 치악산 일대의 송림에 대한 무단벌채를 금하는 표식이다.

* 구룡사 이름 속 숨어있는 전설 *
의상과 아홉용에 얽힌 전설이 전해온다. 원래 대웅전 자리에는 연못이 있었다. 그 곳에는 아홉 마리 용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의상은 치악산을 향해 가던 중 사방을 살펴보니 동쪽으로는 주봉인 비로봉이 솟아 있고, 다시 천지봉의 낙맥이 앞을 가로질은 데다가 계곡의 경치 또한 아름다워 이곳은 절을 세울만한 곳이라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연못을 메워 절을 지으려고 용들과 도술시합을 했다. 용들이 먼저 솟구쳐 올랐다. 그러자 뇌성벽력이 치고 산들이 모두 물에 잠겨버렸다. 용들이 흐뭇해하며 주변을 살피니, 의상은 비로봉과 천지봉에 줄을 걸어 배를 매놓고 그 안에서 자고 있었다. 다음은 의상이 움직였다. 부적을 한 장 그려 연못에 넣었다. 그러자 연못이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고 용들이 뜨거워 날뛰었다. 그때 놀란 용 여덟 마리가 절 앞산을 여덟조각 내면서 동해로 도망치고, 한 마리는 눈이 멀어 함께 도망가지 못하고 못에 머물렀다. 그래서 절 이름도 구룡사(九龍寺)라 했고 한다. 세월이 흘러 절이 퇴락하게 되었고, 어느 날 한 노인이 나타나 절 입구의 거북바위 때문에 절의 기가 약해졌으니 그 혈을 끊으라 했다. 그대로 했더니 절이 더 힘들어졌고 폐사가 되려 했다. 이번에는 한 도승이 나타나 훈수를 했다. 거북의 혈맥을 끊어서 절이 쇠락해졌으니 다시 그 혈맥을 이으라는 것이다. 그래서 절 이름을 구룡사(龜龍寺)로 바꾸었다고 한다.


⊙ 세렴폭포


- 홈페이지
http://chiak.knps.or.kr

-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소초면 구룡사로 427 (소초면, 구룡사매표소)

* 빼어난 경관의 폭포, 세렴폭포 *

아홉마리 용의 전설이 얽혀있는 치악산 구룡사 계곡에 위치한 세렴폭포는 2단으로 휘어져 떨어지는 환상적인 물줄기가 일품이다. 인근의 구룡폭포와 함께 치악산을 대표하는 곳으로 강원 내륙에 산재한 여러 폭포 가운데서도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 구룡사에 대하여 *

치악산의 으뜸 봉우리인 비로봉에서 학곡리 쪽으로 6km 떨어져 있는 구룡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에 의하여 창건되었다. 신라 문무왕 6년(666)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대웅전 자리에 9마리의 용이 살고 있는 연못을 메우고 사찰을 창건하여 구룡사(九龍寺)라 하였으나, 조선 중기에 거북바위 설화와 관련하여 현재의 명칭인 구룡사(龜龍寺)로 개칭하였다고 전해진다. 또한 『치악산구룡사사적』에 따르면 신라말의 고승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재는 강희45년 글자가 새겨진 와당이 출토되어 숙종 32년(1706)에 구룡사가 중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 앞 좌우에는 서상원과 보광루, 적묵당, 심검당의 승사가 있으며 이밖에도 원통문, 국사단, 사천왕문, 범종각, 응진전 등이 있다.


⊙ 치악산 금강송


-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소초면 구룡사로 429

치악산 금강송은 치악산 구룡사 입구에 있는 소나무로 이곳 치악산의 소나무는 몸이 단단하고 질이 좋아 조선 시대 때 궁을 짓거나 관을 만들 때 주로 사용하였다. 이에 치악산 일대의 숲을 왕실이 사용하는 나무인 황장목(黃腸木)으로 지정하고, 황장목의 보호를 위해 '황장금표(강원도 기념물)'를 세워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했다.치악산의 금강송은 나무 안쪽 색깔이 누렇고 질이 좋은 소나무로 왕실에 올리는 특산물 중 하나였고, 전국 30여 개의 황장목 보호림 중 이름난 곳이었다. 조선 시대 때부터 철저히 관리해 온 이 일대에는 현재 20~30m 높이에 달하는 크고 웅장한 소나무 숲이 들어서 있다.


⊙ 치악산 구룡자동차야영장


- 홈페이지
https://reservation.knps.or.kr/

-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소초면 구룡사로 (소초면)

치악산 주 탐방로인 구룡지구 초입에 위치하고 있다. 모든 영지에는 전기공급이 가능하며, 영지 사이즈는 평균 6m x 7m 로 여유있는 장비 설치가 가능하다.
부대시설로서 샤워장, 취사장, 화장실이 구비되어 있고 Wi-Fi 서비스가 제공된다. 야영장 주변에는 풍부한 수량의 구룡계곡과 주 탐방로로 이어지는 금강소나무길, 천년고찰 구룡사가 있어 시원한 물놀이와 산책 및 문화탐방 등의 즐길거리를 제공한다. 야영장 이용은 인터넷 예약으로만 가능하다.

⊙ 원주 운곡원천석묘역


- 홈페이지
https://www.wonju.go.kr/tour/index.do
http://www.cha.go.kr

-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행구동

* 무학대사가 잡아준 묘터, 원주 운곡원천석묘역 *

운곡 원천석(1330∼?)선생의 묘로 2000년 11월 18일 강원도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선생의 묘역 내에는 봉분 앞에 모비와 제사음식을 차려 놓을 수 있는 상석(床石)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신도비가 있는 소박한 형태이다. 강원도 원주시 행구동 치악산 산자락에 있는 원천석의 묘 앞에는 ‘고려국자진사원천석지묘(高麗國子進士元天錫之墓)’라 새겨진 묘비와 상석이 놓여 있고, 묘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1670년(현종 11)에 세운 묘갈이 있다. 원천석의 유언에 따라 본래 표석을 세우지 않았다가 4대가 지난 후에 묘표가 세워졌다 하는데 묘갈의 글과 전서(篆書)는 조선 중기의 학자 미수 허목(許穆 1595~1682)이 짓고 썼으며, 글씨는 이명은(李命殷)이 썼다. 전하는 얘기에 의하면 원천석의 묘지는 무학대사가 잡아 주었다 한다. 묘역에는 1704년에 건립하고 1984년 개축한 재사(齋舍)인 모운재(慕耘齋)와 2006년 8월 31일 운곡대종회와 운곡학회에서 건립한 사당 창의사(彰義祠)가 있으며, 모운재 옆에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다.

* 운곡 원천석 선생에 대하여 *

원천석 선생은 어릴 때부터 학문에 밝아 목은 이색 등과 함께 성리학의 보급에 큰 역할을 했으며 조선 태종의 어릴적 스승이기도 하였다. 고려말에 정치가 문란해지자 이를 개탄하면서 치악산에 들어가 숨어버렸다. 조선왕조가 들어서 선생에게 벼슬이 주어지자 고려에 대한 충절을 끝까지 지켜 나아가지 않았다.

⊙ 입석사(원주)


- 전화번호
033-731-1410

- 주소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소초면 황골로 707 (소초면)

* 오래된 사찰의 아름다움, 입석사 *

원주에서 동북쪽으로 약 7km가량 나아가면 옛부터 강원도 엿으로 유명한 황골 마을이 있고, 이곳에서 동쪽으로 치악산을 3km 가량 올라가면 높이 50m의 절벽 위에 10m높이로 우뚝 서있는 네모꼴 바위 입석대가 있다. 이 바위와 남쪽 50m 지점에 있는 신선대 사잇길로 들어가면 왼쪽에 입석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이 절의 역사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신라시대에 의상대사가 이곳에 와서 수도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그러나 입석대 앞쪽에 있는 삼층석탑과 입석대 서북쪽 약20m 지점의 석벽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은 이 절의 역사를 대변해 주고 있다.

* 입석사의 유적 및 유물 *

입석사 앞에 있는 석탑(입석사 석탑, 강원도문화재자료)은 무너져 있던 것을 다시 세운 것으로, 2기의 석탑 부재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연꽃받침에 탑신을 세웠는데 조각양식과 수법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입석사 큰 길로부터 서북 방향으로 약 30m쯤 올라가면 나타나는 입석대 옆의 암벽에는 마애불좌상(원주 흥양리 마애불좌상, 강원도유형문화재)이 새겨져 있다. 연화대좌와 광배(光背)를 포함한 높이 117cm, 불상 높이 62cm로, 역시 고려시대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3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