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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경기도 화성시] 화성G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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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GC


- 홈페이지
http://www.hwaseonggc.com/

- 주소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화성로 1393-27

서울에서 가까운 화성 시청 인근에 자리 잡은 골프 클럽이다. 아담한 9홀 규모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퍼블릭 골프장으로 9홀을 2바퀴 플레이한다. 양쪽으로 나무가 잘 심어져 있어 조경이 아름답고 코스는 각 홀마다 특색 있게 구성되어 있다. 부킹 매니저나 앱을 통해 조인 플레이가 가능해 당일에도 어렵지 않게 라운딩을 할 수 있다. 스마트 스코어 시스템이 도입되어 스마트폰으로 스코어를 편리하게 확인할 수 있다. 주차장은 여유 있을 만큼 넓고 75타석 규모의 드라이빙 레인지에는 국내 최고 프로들이 참여하는 골프 아카데미가 있다. 도심 속 스트레스를 가까운 곳에서 산림욕 하듯 라운딩 할 수 있어 많은 골퍼들이 찾는 곳이다.


※ 소개 정보
- 문의및안내
031-369-8900

- 쉬는날
명절

- 신용카드가능정보
가능

- 애완동물동반가능정보
불가

- 예약안내
홈페이지 예약 사이트 이용

- 유모차대여정보
없음

- 이용시간
계절 및 날씨에 따라 변동되므로 예약실로 문의

- 주차시설
주차가능





◎ 체험프로그램
골프레슨



◎ 이용요금
그린피 9홀 기준 주중 65,000원, 주말 85,000원 / 카트비 18홀 80,000원 /캐디비 150,000원(18홀)
※ 이용요금은 변동될 수 있으므로 홈페이지 참조 또는 전화 문의 요망



◎ 부대시설
클럽하우스, 레스토랑, 스타트하우스, 휘트니스, 락카, 크로샵, 연습장



◎ 주요시설
9홀



◎ 주요시설
안전시설 설비사항: 안전보험가입, 상비약 보유





화성GC_9코스화성GC_8코스화성GC_6코스화성GC_5코스



◎ 주위 관광 정보

⊙ 윤계선생순절비


- 홈페이지
http://www.grandculture.net/hwaseong

- 주소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리

윤계선생순절비는 병자호란 때 순절한 윤계(1603~1636)의 행적을 새긴 비이다. 본관은 남원이고 호는 신곡이다. 인조 14년(1636) 남양도호부에 부사로 파견되어 공무를 시작하였는데, 겨울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침략 소식을 들은 윤계는 전열을 다듬어 청군과 맞서고자 하였으나, 남양도호부 사람들과 군사들 대부분은 홍법사로 후퇴하였다. 윤계는 도호부 수장인 부사가 관아를 비우고 물러날 수 없다면서 후퇴를 거부하고 맞서 싸웠지만, 청군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결국 관아 뜰에 깃발을 세우고 끝까지 저항하다가 죽음을 맞았다. 윤계가 순절한 지 10여 년이 지난 효종 1년(1650) 조정에서 윤계에게 이조 참판 벼슬을 내렸고, 현종 9년(1668)에는 읍민들이 윤계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비석을 세웠다. 순절비는 남양부 관아에서 5리(1.96㎞)쯤 떨어진 오리정 앞에 세워졌는데, 남양부를 드나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나야 하는 자리였다.
순절비는 사각형의 받침돌에 윗면이 둥근 비신(글씨를 새기는 부분)을 세운 방부원수 양식이다. 비신은 대리석으로 만들었고, 방부는 화강암으로 조성하였다. 방부 윗면에는 복련(연잎 문양)을 장식하였다. 비문은 송시열이 짓고 글씨는 송준길이 썼으며 전액(전서체로 비석의 이름을 새긴 부분)은 민유중이 썼다. 세 사람 모두 당 남대의 명사들이어서 윤계의 역사적 위상을 가늠할 수 있다. 대리석으로 만든 비신 앞면이 약간 파손되었으나 전반적인 상태는 양호하다.

⊙ 남전낚시터


- 주소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이로132번길 79-13

방갈로와 좌대 전체에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다.
잔교에도 전기시설이 되어 있어 개인 선풍기, 충전기, 커피포트 사용이 가능하다.
의자, 수건, 뜰채는 제공하지 않아 불편할 수 있다
고기 방류는 화, 목, 금, 토요일에 진행하고 있으며 수심은 3m 이상으로 깊은 편이다
화재 위험으로 좌대 내에서의 취사나 전기난로 사용은 금지하고 있다.
남전 낚시터 주변 산은 산악 전기자전거 타기 좋아 소문난 곳이기도 하다
식사는 전화로 주문하고 안내방송이 나오면 식당으로 가서 먹을 수 있다.

⊙ 마실휴양농원


- 홈페이지
https://blog.naver.com/dpdnjs8020

- 주소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

누구나 편안하고 부담 없이 이웃집 마실 오듯 찾아오시라는 뜻의 이름인 마실휴양농원은 2014년 화성시 농업기술센터로 에듀팜 교육농장으로 지정되었으며 세미나실, 교육장, 족구장, 단체가 숙박할 수 있는 시설까지 갖추어진 농원이다.
산속에 위치해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넓은 잔디밭에서 노을을 구경하기 적합한 장소인 농원은 블루베리 수확철인 6월 10부터 7월 초에는 체험객들에게 펜션을 휴식공간으로 개방한다.
먹거리를 준비해오면 고기도 구워 먹을 수 있는 공간과 산책로, 모래놀이터도 있어서 블루베리 수확체험의 연장으로 다양한 체험이 가능하다. 친환경 무농약으로 자라서 씻지 않고 바로 먹을 수 있는 블루베리는 구매도 가능하다.
반려견 동반 가능한 오토캠핑장과 펜션도 있어 다양한 행사와 공간 연출이 가능하므로 이용 시에는 반드시 전화 문의 후 가능하다.

⊙ 너른공원


- 홈페이지
https://blog.naver.com/hsview

- 주소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리

너른공원은 방아다리공원과 2021년 대한민국 조경대상 조경학회장상을 수상한 화성시 동탄 일반산업단지 미세먼지 차단숲이다. 너른공원과 방아다리공원은 연결되어 있는데 너른공원을 중심으로 오른쪽, 왼쪽에 상가와 주택들이 자리 잡고 있다.
너른공원 산책로는 쭉 뻗은 길이 매력적이며 공원 한가운데로 바람이 지나게 되어 있어 좋다. 삭막한 건물 사이에 나무와 풀, 공원이 조성되어 있어서 나쁜 공기도 정화해 줄 것 같은 곳이다. 너른공원을 걷다 보면 게이트볼장과 풋살장 그리고 여러 가지 운동시설들도 있다.
너른공원 끝자락에는 방아다리공원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방아다리공원에는 농구장, 족구장, 테니스방, 야외무대, 운동시설들이 있고 테니스장과 농구장 주변으로 햇빛을 피할 수 있는 정자와 의자들도 있어 운동 중간에 휴식을 취할 수 있다.
너른공원에서 시작해 방아다리공원까지 산책로가 잘 조성된 이곳은 미세먼지 차단 숲답게 산책로마다 나무와 풀, 물이 보이는 곳으로 인공적인 느낌보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다.
미세먼지 저감효과가 높은 다양한 수종들을 활용한 혼합림을 조성해 쾌적한 대기 환경과 여가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일몰 30분 후~23:00까지 공원 내 경관조명들이 환하게 밝혀져 예쁜 야경을 보며 반려동물과 함께 산책하기 좋다.

⊙ 남양체육공원


- 홈페이지
https://blog.naver.com/hsview

- 주소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리

높은 아파트와 빌딩들이 둘러싸고 있는, 도심 속에서 여유롭게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면서 건강을 챙길 수 있는 화성 남양체육공원은, 게이트볼장, 축구장, 풋살장, 운동기구 등 다양한 체육시설을 갖추고 있는 곳이다.
남양천과 인접해 있고 생태습지원, 연지원이 함께 있어 자연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체육공원이다. 체육공원 입구에 넓은 주차장이 있고, 주차장 바로 옆에는 깔끔한 화장실을 갖추고 있는 관리사무소가 있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잔디밭을 양옆에 두고 깔끔하게 보도블록을 깔아놓은 산책로가 있고, 산책로는 다시 게이트볼장으로 이어진다. 인조잔디가 깔려있는 게이트볼장에는 커다란 지붕이 설치되어 있어 비가 오는 날에도 즐길 수 있다.
인조잔디가 깔린 축구장과 테니스코트 그리고 주변으로 푹신한 매트가 깔려있는 트랙을 만들어 놓아서 뛰거나 걷는 것에 무리가 없다. 산책로 중간중간에는 벤치가 놓여있어 여유롭게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며 주변으로 나무들을 빼곡하게 심어 상쾌한 공기도 마음껏 마실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곳곳에 방범용 cctv가 설치되어 있어 늦은 시간에도 마음놓고 운동할 수 있다.
남양체육공원의 또 다른 매력은 남양역사문화공원과 맞물려 있다는 점인데, 남양도서관 옆 터널을 지나면 너른 휴게뜰이라는 넓은 광장이 있어 자전거와 인라인스케이트, 퀵보드 타기를 즐길 수 있다.
너른 뜰 곳곳에는 그네 의자와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아카이브 부스가 비치되어 있어 자유롭게 책을 꺼내어 볼 수 있고, 오리정 뒤쪽에는 뒷동산을 오를 수 있도록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다.

⊙ 봉림사(화성)


- 홈페이지
http://www.grandculture.net/hwaseong

- 주소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주석로80번길 139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북양리 비봉산에 있는 사찰인 봉림사는 신라 진덕여왕 때 고구려의 침략을 불도의 힘으로 막기 위하여 창건하였고, 궁궐에서 기르던 봉황새가 절 주위의 숲에 와서 앉아 봉림사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1621년(광해군 13) 안모와 자현이 중수하였다. 1708년(숙종 34)에 중건하였고, 1884년(고종 21) 무렵에도 중건하였다.
봉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용주사의 말사이며, 사찰에는 보물인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이 있다. 1978년에 불상을 금으로 다시 색칠하는 [개금불사] 과정에서 복장에서 사리와 유래를 적은 기록과 불경이 발굴되면서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이를 통해 불상의 제작연대(1362년. 고려공민왕 11)또한 밝혀졌다. 1979년에 아미타여래상의 복장에서 나온 사리를 봉안한 삼층 사리탑을 세웠으며, 1992년에는 요사를 개축하고, 1998년 삼성각을 건립하였다. 봉림사의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과 삼성각·봉향각·망양루·범종각·요사채 등이 있으며, 복장에서 나온 감은자화엄경 등 유물 10여종은 별도로 91년 보물로 지정되었고, 이 중 [묘법연화경] 5종 13권을 제외한 나머지는 용주사에 보관중이다.
보통 사찰하면 주변에 숲이 울창하고 조용한 공간을 떠오리게 하지만 화성 봉림사 입구는 산업화로 인해 많은 공장들이 들어서다 보니 공단과 함께하는 사찰이 되었다. 일주문과 천왕문을 지나 사찰까지 약 100~200미터 정도되는데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으며, 범종루는 출입구가 있는 2층구조로 석축 위에 올려져 지어졌다. 대문역할을 하는 범종루는 단청이 화려하고 멋스러우며, 대웅전은 좌우로 나무들이 둘러싸고 있다. 사찰 진입전 주차장 입구 부근에 무봉산으로 오르는 등산로가 있으며, 정상까지 700미터 정도 거리이다.

⊙ 화성남양리신빈김씨묘역


- 홈페이지
https://tour.hscity.go.kr

- 주소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리

신빈 김씨(1406~1464)는 세종의 후궁이며, 본관은 청풍이다. 본래 내자시(왕실에 필요한 각종 물자의 공급을 담당한 곳) 여종이었으나, 세종이 즉위하던 해 13세의 나이로 원경왕후에게 발탁이 되어 중궁전으로 보내졌다. 1435년 후궁으로 계양군 등 5 왕자를 낳았으며, 5번째 아들 영해군을 낳은 뒤 소의, 1439년 귀인에 올랐다. 그녀는 천성이 부드럽고 매사에 조심스러워 소헌왕후에게도 사랑을 받았으며, 소헌왕후는 그녀에게 막내아들 영응대군의 유모 역할을 맡기기도 하였다. 세종이 죽자 신빈은 머리를 깎고 비구니가 되었다. 단종이 다시 환속하도록 하였으나 끝내 듣지 않았다. 신빈김씨는 6남 2녀를 낳았으니 계양군 이증, 의창군 이강, 밀성군 이침, 익현군 이관, 영해군 이당, 담양군 이거이며, 딸들은 모두 일찍 세상을 떴다.
신빈김씨 묘는 봉분 주변으로 곡장이 둘러져 있으며, 봉분 앞에 석상과 향로석, 장명등이 놓여 있고 그 좌우로 문인석 한쌍이 건립되어 있다. 이 중 복두공복 형태의 문인석만 15세기의 작품이다. 묘 동쪽에는 비각이 있으며 이곳에 신도비가 건립되어 있다. 1465년에 건립한 신빈김씨 신도비는 하엽수방부(연잎 형태의 비석 머리와 네모난 비석 받침) 형태이며, 김수온이 글을 짓고, 안혜가 글씨와 전서를 썼다. 전서로 [신빈김씨묘비]라고 새겨져 있어서 신도비임을 알 수 있다.
세종의 많은 후궁들 중 후손이 가장 번창하였고, 인품이 온화한 덕분에 화성시에 조성된 신빈김씨의 묘역을 능이나 원에 못지않게 깔끔하게 단장되어 관리하고 있다.

⊙ 남이장군묘 (화성)


- 홈페이지
https://www.heritage.go.kr

- 주소
경기도 화성시 비봉면 남이로

남이장군 묘는 화성시 비봉면에서 2.5km 떨어진 한양 조씨의 선산 내에 있으며 남이장군과 부인이 함께 있는 쌍분묘로 1973년 7월 10에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남이(1441∼1468)는 본관은 의령으로, 태종의 외손이며 좌의정 권람의 사위이다. 1457년(세조 3) 17세 때 무과에 급제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았다. 이시애의 난(1467)이 일어나자 출전하여 용맹을 떨쳤고, 여진의 건주위를 정벌할 때에도 선봉으로 적을 무찔러 이름을 날렸고, 26세의 나이에 병조판서에 올랐다. 그러나 1468년에 28세때 예종이 즉위하자 유자광의 모함으로 역모를 꾀한다하여 죄명을 쓰고 능지처참형을 당하였다. 역적으로 몰린 남이장군의 후손들이 시신이 훼손되는 일이 없게 남이섬과 전국 각지에 남이장군 이름의 가묘를 만들었고, 고증을 거쳐 이 곳이 남이장군의 실제 묘소로 확인되어 이곳에서 후손들이 제사를 지낸다.
현재 묘역에는 장군과 부인이 합장되어 있고 봉분은 2기이며, 봉분 아랫부분은 둘레석이 둘러져 있다. 묘 앞에는 묘비가 세워져 있고, 좌우에는 문인석과 망주석이 1쌍씩 있다. 조선 초기의 예술성을 그대로 담고 있는 석인상은 경기 지역 능묘 문화의 특성을 살필 수 있어 중요하다.

⊙ 남양성모성지


- 홈페이지
http://www.namyangmaria.org

- 주소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남양성지로 112

남양 성모 순례지는 병인년(1866년) 대박해 때 많은 순교자들이 피 흘리며 죽어간 무명 순교지이다. 이곳에서는 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는데 치명일기(致命日記)와 증언록에 기록이 전해지는 남양의 순교자는 충청도 내포 사람 김 필립보와 박 마리아 부부, 용인 덧옥돌 사람 정 필립보, 수원 걸매리 사람 김홍서 토마 네 사람뿐이다. 남양 순교지는 다른 순교지와는 달리 무명 순교자들의 치명터였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 무관심 속에 방치되어 오다가, 1983년부터 성역화되기 시작하였다. 그 후로 많은 어려움 속에서 작은 정성들을 모아 가꾸어져 오던 남양 순교지는 1991년 10월 7일 로사리오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축일에 성모께 봉헌되고 한국 천주교회 사상 처음으로 성모 순례지로 공식 선포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화성시에서 화성 8경 중의 하나로 지정하여 홍보하고 있을 만큼 아름답게 가꾸어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남양순교성지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화강암의 대형묵주알, 그리스도왕상, 성모동굴, 오솔길 소자상, 요셉성인상 등이 있으며, 아늑하고 성스러운 분위기 조성을 위한 성지 조성사업을 대대적으로 실시, 성모님 품 같이 아늑하고 포근한 경관을 지닌 곳으로 시민은 물론 전국의 천주교 신도들의 순례지 겸 휴식장소로도 잘 알려져 있다.

* 순교지로서의 남양
조선조 때 남양은 서해안의 군사적 요충지로서 행정과 사법권을 부여받은 종삼품의 도호부사가 부임했던 곳이다. 남양부사는 경기도 관찰사의 감독 아래 이반행정에 관한 권한 외에도 민사소송과 형사범을 다루는 사법권까지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남양은 물론 그 인근에서 붙잡은 천주교인들을 도호부사가 있던 남양으로 끌어다가 처형했다. 그리고 남양은 지리적으로도 신앙 활동이 자유로웠던 중국과의 연락이 용이한 서해안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조 당시 이곳에는 많은 천주교인들이 찾아들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남양과 이웃해서 백학 교우촌이 있던 것도 이곳이 순교지가 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 기록에 나타난 순교자들
- 김 필립보(1818~1868) 충청도 내포사람으로 조모의 가르침에 따라 입교하려 했으나, 부친의 반대로 어려움을 겪은 후 후일 반대하던 부친과 함께 교리를 배워 영세했다. 전교도 열심히 했고 사제의 공소 방문 때는 사제의 성무를 도왔으며 교우들이 바른 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병인년 대박해 때 피신하여 살다가 1868년 남양 감영 포졸에게 아내 박 마리아와 함께 붙잡혀 남양으로 끌려왔다. 이 부부는 온갖 형벌에도 배교치 않았으며 한달 동안의 옥고 끝에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당시 나이 50세였다.
- 박 마리아(1818~1868) 순교자 김 필립보의 아내로 1868년 남편과 같이 남양 감영 포졸에게 잡혀서 남편과 함께 남양으로 끌려와 한달 동안의 옥고와 가혹한 형벌을 이겨내고 남편 김필립보와 같이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당시 나이 50세였다.
- 정 필립보(?~1867) 경기도 용인의 것옥골에서 살았는데, 1866년 11월 남양 감영의 포졸에게 붙잡혀 가옥한 형벌에도 굴하지 않고 다음 해 1867년 1월에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 김홍서 토마(1830~1868) 수원 갈매리 사람으로 1868년 남양 감영의 포졸에게 아내와 함께 감옥에 끌려왔다. 아내는 배교하여 풀려났으나, 김홍서 토마는 끝내 배교치 않고 김 필립보 부부와 함께 교수형으로 순교했다. 배교한 아내는 김홍서 토마가 순교하자 시신을 찾아 장례를 치렀다. 순교자 김홍서의 나이는 38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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