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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경기도 안성시] 반제낚시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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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제낚시터


- 홈페이지
http://www.banje.co.kr/

- 주소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반제호수길 90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반제저수지에 있는 낚시터이다. 반제저수지는 수 면적 약 100,000 m2, 만수시 수심 3~6m, 최저 수심 2m의 준계곡형 저수지이다, 낚시터에는 노지, 잔교, 부교, 방갈로가 있다. 콘크리트와 철골로 만들어진 수상 부교에는 식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고정식 원목 대형 테이블이 있다. 방갈로에는 전기온돌, TV, 냉장고, 에어컨, 이불, 거품식 화장실, 냉온수기 등의 편의시설이 있다. 부정기적으로 송어 낚시터를 운영한다. 가까이에 칠곡저수지, 고삼호수가 있다, 평택 제천 간 고속도로 서안성 나들목 IC에서 차로 1분 거리다.


※ 소개 정보
- 문의및안내
031-652-6369

- 쉬는날
연중무휴

- 신용카드가능정보
없음

- 애완동물동반가능정보
없음

- 유모차대여정보
없음

- 이용시간
00:00~24:00

- 주차시설
있음

- 주차요금
없음





◎ 이용요금
입어료 30,000
※ 이용요금은 변동될 수 있으므로 홈페이지 참조 또는 전화 문의 요망



◎ 주요시설
안전시설 설비사항
구명부환, 구명동의, 구명줄, 소화기, 구급약품, 관리선, 관리선내 구명조끼, 단독경보형 감지기, 내부피난안내도



◎ 부대시설
관리실, 식당, 매점, 화장실, 잔교, 부교, 방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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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 관광 정보

⊙ 만정낚시터


- 주소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만수동길 53-8

만정 낚시터는 약 265,000㎡의 안성 만정지에 위치하고 있다.
수상 좌대, 펜션형 수상 좌대, 방갈로, 식당을 함께 운영하고 있어 동호회는 물론이고 가족단위의 방문도 많은 편이다. 화장실과 샤워실을 갖췄으며 수상 좌대에서의 취사는 금지가 기본 원칙이다. 붕어, 잉어, 가물치, 향어가 많이 잡히는 곳이다.

⊙ 무양산성(무한성)


- 홈페이지
http://www.anseong.go.kr/tour/

- 주소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방신리

이 성은 산정 고원지에 둥글게 쌓은 석성으로서 이러한 산성은 고대에 많이 축성해 온 형태이다. 이 성은 일명「무한성」이라고 현지에서 불려 오기도 하는데「신 증동국여지승람」 한성현 고적조 및 성지조에는 분명히「무양성:현」 남쪽 12리 지점에 있는데, 석축이다. 둘레는 1천 305척이며 성안에 못 하나가 있다」고 했고, 광무 3년(1899)에 간행한「양성읍지」에도 「무한성 남단아래 고성이 있어 속칭 옛 고을터가 완연하다」고 기록으로 미루어 무한성 또는 백운산이라는 명칭이 보다 옳을 것이다. 아마도 무한성이란 이름은 무양이라는 사람이 운수암을 보호하기 위해 이 성을 쌓았다는데서 유래된 것 같이 전해오고 있으나, 이는 근거 없는 속전에 불과할 뿐이다. 성곽의 길이나 하단부터의 석축규모로 보아 이 성은 개인의 힘이 아닌 관에 의해 장기간 집단적인 대규모 노역공사로 조성된 것임이 확실하다. 이 성곽의 축성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대략 삼국시대로 추정된다.

* 연대 - 삼국시대
* 규격 - 길이 약 120m, 높이 2m, 폭 1m
* 재질 - 토축


⊙ 운수암


- 주소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성하길 80-63

운수암은 안성 고성산 무양 산성 안의 중앙 고지에 자리 잡고 있다. 조선시대인 1750년(영조 26)에 장씨 부인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과부였던 장씨 부인이 부처를 모시려고 무양 산성 밖에 터를 닦았는데, 꿈에 노승이 나타나 성안에 절을 지으라고 말하였다. 그 자리에 가서 쓰러진 풀과 나무를 치우고 보니 절터로 적합하여 이 암자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1870년(고종 7)에 대원군이 시주하여 중건되었고 운수암이라고 쓴 친필 현판을 하사하였으며, 1986년에는 대웅전이 중건되었다.
현재 암자의 중앙 높은 터 위에 대웅전이 있고 그 옆에는 비로전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요사채는 비로전의 주축과 직교되게 위치하고 있다. 돌보는 사람이 없어 무너지기 직전인 것을 현암 스님이 보수하고 대웅전을 불사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방산리 입구에서 서북쪽을 향해가면 낙엽송과 송림 사이로 운수암의 정취가 눈에 잡히며, 청아한 목탁소리가 숲길에 먼저 배웅 나오는 운수암은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으며, 고려 시대 조성한 비로자나 불좌상이 있다.

⊙ 달빛과쉬는시간


- 홈페이지
https://pf.kakao.com/_nhTGC

- 주소
경기도 안성시 공도읍 용머리길 9-20

도심가에 위치한 달빛과 쉬는 시간은 캠핑 감성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2천 평이 넘는 공간에 조성되어 있다. 참나무 한방 통닭을 예약 판매하고 있고 셀프 바비큐장에 먹을거리만 준비해 오면 그 외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어 캠핑을 할 수 있다. 개별 물놀이장이 있는 돔은 하루 5팀만 입장이 가능하며 100% 예약제이고, 케어 키즈존으로 아이들의 안전은 부모가 직접 챙겨야 한다. 투명돔 내부에는 에어컨이나 난로가 설치되어 있다. 돔 내부에서 숯불 사용이 가능하지만 셀프 숯불 착화 시에는 화재 위험이 있어 외부에서 하여야 한다. 봄, 가을, 겨울에는 캠핑을 즐길 수 있고 여름에는 물놀이까지 즐길 수 있다.

돔마다 개별 풀이 있는 것이 가장 큰 장점이긴 하지만 11시부터 사용하는 팀만 수영장을 사용할 수 있어서 아쉽기도 하다. 얕은 물에 에어 바운서가 설치되어 있고 트램펄린과 잔디밭에서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다. 그 외 소방체험, 감자 캐기, 옥수수 따기, 고구마 캑 등을 지정된 날짜에 체험할 수 있고, 토끼, 닭, 산양 먹이주기 등은 항상 할 수 있다. 외부 음식이나 배달 음식이 반입되기 때문에 바비큐장 사용을 하지 않아도 식사 준비가 부담스럽지 않다. 돔 안에 회전목마가 설치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재미있게 탈 수 있고 밤에는 불빛이 있어 아름답다.

⊙ 독정낚시터


- 홈페이지
https://m.cafe.daum.net/docsalove/_rec

- 주소
경기도 안성시 원곡면 원당로 108

경기 안성시 원곡면 독정저수지에 위치한 낚시터이다. 독정저수지는 수 면적 약 36,000 m2, 수심 3~6m의 평지형 저수지이다. 개인 좌대, 수상좌재, 연안좌대, 잔교 좌대와 방갈로가 있다. 방갈로에는 TV, 에어컨, 온돌, 침구류 등이 있다. 주 어종은 붕어이다. 새우나 지렁이, 땅강아지 등 생미끼를 사용하면 메기와 장어를 낚을 확률이 높아진다. 가까이에 칠곡저수지, 반제낚시터, 고삼 호수가 있다. 평택 제천 간 고속도로 서안성 IC에서 차로 5분 거리다.

⊙ 고성산


- 홈페이지
안성문화관광 http://www.anseong.go.kr/tour

- 주소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 산71-1 (일대)

높이 298m인 고성산은 만세고개에서 운수암에 이르는 등산코스가 제법 운치 있다. 안성시 양성면 방신리 쪽에서 오르면 운수암을 먼저 만날 수 있다. 방신리 입구에서 서북쪽을 향해 가면 낙엽송과 송림사이로 운수암의 정취가 눈에 잡힌다. 청아한 목탁 소리가 숲길에 먼저 배웅 나오는 운수암은 경기도 문화재자료 2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고려시대 조성한 비로자나 불상이 있다. 운수암은 조선 영조 26년에 창건된 사찰이다. 전설에 따르면, 한 보살이 평생 부처님을 모시고 살아갈 것을 결심하고 처음에는 무산성 아래에 터를 닦고 있는데, 하루는 꿈에 성안에 절을 지으라는 부처님의 계시를 받고 성안으로 들어가 꿈에 나타난 곳을 찾아가 옛날 절터를 발견하고 그 자리에 절을 세웠다고 한다. 훗날 이 보살이 죽자 잡초가 무성한 이 절을 대원군이 중건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하면서 친필로 운수암이라고 쓴 친필현판을 내려 유명해진 절이다. 그러나 돌보는 사람이 없어 무너지기 직전인 것을 현암스님이 보수하고 대웅전을 불사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찬찬히 운수암을 둘러봤다면, 잘 닦아진 등산로를 함주어 조금 걸으면 약수터가 나온다. 여기서 잠깐 땀을 식히고 발걸음을 옮기면 고성산 정상이 나온다. 고성산 정상에 오르면 안성 양성지역의 드넓은 들판과 평택으로 뻗은 평야가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주변 경치를 감상했다면, 216 고지를 향해 걸어보자. 정상에서 내려오면 비법사 쪽으로 내려가는 작은 등산로가 나오는데, 이 길 말고 216 고지를 넘어 산장휴게소 뒤편으로도 하산할 수 있다. 특히 산장휴게소 맞은편에 3.1 운동 기념관이 새로 조성돼 역사의 현장을 둘러볼 수도 있다.

⊙ 경앙사


- 홈페이지
https://www.anseong.go.kr

- 주소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덕봉리

경앙사는 오진영 선생의 문인들이 조선 후기 대표적인 성리학자인 노주 오희상을 비롯해 간재 전우, 석농 오진영 선생의 학덕과 절개를 기리기 위해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을 올리는 사당이다. 매년 음력 3월 10일 제사를 지내고 있다.
건물의 총 26㎡(8평)로 겹처마 맞배지붕의 한옥이며 홍살문, 삼문, 사당 등이 차례로 배치되어 있다.
특히 현판 액자는 석농의 제자인 월헌 이보림 선생이 썼다고 전해지는데 여기서 경앙은 高山仰止 景行行止 즉, 산은 사람을 우러러보고 길은 사람이 많이 다니므로 천하만인에게 존경받는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오희상 선생은 일찍부터 학문에 힘써 성리학의 일가를 이루었고, 정조 24년(1800) 세자익위사 세마가 된 후 여러 차례 벼슬을 하다가 사직하고 광주 징악산에 은거하면서 성리학 연구에 힘썼으며 사망 후엔 헌종 7년(1841)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전우 선생은 경전을 깊이 연구해 당대 최고의 학자라는 평을 들었으며 을사늑약 때 을사오적의 참형을 요구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이를 전하지도 못하자, 다음을 기약하며 후진 양성에 힘을 썼다. 의병운동과 3·1운동 등 항일운동이 거셌던 시기라 이를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나 개의치 않고 계화도에서 수많은 제자를 가르치고 6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오진영 선생은 전우 선생의 제자로 을사늑약에 분개하여 각국의 공관과 정부에 부당함을 알리는 글을 보냈으며, 이수홍과 파리 만국회의에 보낼 공문을 작성하였으나 전달에 실패했다.
1938년 화양동 만동묘 철거를 반대하고 추담별집을 간행, 배포했다. 흰옷과 검은 갓으로 끝까지 항일의 뜻을 굽히지 않았고 학문 연구와 제자 양성에 힘썼다.

⊙ 선비마을


- 홈페이지
http://www.sunbidm.com

- 주소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덕봉길 45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500년 동안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지내온 '산신제' 500년의 역사 동안 해주오씨를 명가로 만들었던 훌륭하신 선대 조상님들의 흔적.훌륭한 분들의 정신을 존경하고 계승하기 위해 매년 올리는 재례가 있다. 마을 뒤 고성산 아래 풍수지리의 삼수혈을 따라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풍수지리의 마을이며, 선대 어르신을 공경하는 후손의 마을이 가득 담긴 19개의 크고 작은 묘역들과 선비 정신으로 충, 효, 예를 지키며 살아온 마을의 전통 관습 등 옛 모습 그대로 잘 보존된 마을이다. 예전부터 해주오씨가 모여 살던 해주오씨 집성촌으로, 관련 문화·역사 자원을 비롯해 빼어난 자연, 생태 자원 및 인적 자원을 보유하고 있다. 또 3·1운동의 본거지로 근대사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던 마을이며, 안성선비마을은 선비정신과 문화, 역사를 소중히 간직하고 지키며 살고 있다. 그 중심에 해주오씨 문증의 '조상과 가족을 위하는 마음'이 있는 곳이다.

⊙ 안성 정무공 오정방 고택


- 홈페이지
http://www.anseong.go.kr/tour
http://www.cha.go.kr

- 주소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덕봉길 66

이 한옥 민가는 안채와 사랑채를 붙여서 한 채로 건립한 것으로 형태는 곱은 자형에 1고주 5량 집이다. 사랑채 뒤에는 2칸 사당이 있고, 본래의 사랑채는 없어졌다고 한다. 건립 연대는 약 2백 년 전까지로 올라갈 수 있으나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전면적인 보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현재는 안채만이 비교적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본래 이 집은 중종 5년(1510)에 처음 세운 이후 정무공 오정방(1588~1634) 천파고오상에서 충정공 오두인(1624~1689)에 이르기까지 해주 오 씨 명인들을 배출한 유서 깊은 곳으로 전해내려온다. 특히 충정공은 이 집에서 성장하여 나라에 크게 공훈을 떨친 바 있어 우암 송시열이 편액을 써서 보내오기도 했다고 한다. 당초에는 덕봉리 252번지에 세워졌던 것이나 효종 1년(1650)에 현 위치로 이전해 왔다고 하며 건물은 1935년에 중수한 것이다. 현재의 건물은 대지 740.49m²(224평)에 사당 18.57m²(5.62평), 안채 102.87m²(31.12평), 사랑 102.87m²(6.52평) 규모의 3동이 자리 잡고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치목수법, 건물의 배치 및 구성 수법이 우수하여 조선 중·후기의 주택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3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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