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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경상북도 의성군] 빙계얼음골 야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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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계얼음골 야영장


- 홈페이지
https://www.usc.go.kr/icevalley/main.tc/

- 주소
경상북도 의성군 가음면 빙계계곡길 51

빙계 얼음골 야영장은 경북 의성군 가음면 현리리에 자리 잡고 있다. 의성군청을 기점으로 21km가량 떨어져 있다. 자동차를 타고 군위금성로와 금성현서로를 차례로 거치면 닿는다.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은 25분 안팎이다. 4인용과 6인용으로 구분된 카라반이 각각 7대와 5대, 데크와 파쇄석으로 이루어진 오토캠핑 사이트가 각각 15면과 18면, 개인 카라반 사이트 16면이 마련되어 있다. 오토캠핑 사이트 면적이 넓어 대형 텐트를 설치하기에 무리가 없다. 카라반 내부에는 일상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비품을 들어차 있다. 잘 정비된 산책로를 비롯해 잔디광장, 매점, 놀이터, 세족대, 정자 등이 갖추어져 있다.


※ 소개 정보
- 개장기간
봄,여름,가을,겨울

- 문의및안내
054-833-5101

- 쉬는날
없음

- 신용카드가능정보
없음

- 애완동물동반가능정보
불가

- 예약안내
https://www.usc.go.kr/reserve/page/2604/1744.tc?mn=2604/

- 유모차대여정보
없음

- 주차시설
있음

- 주차요금
없음





◎ 이용요금
15,000원 ~ 150,000원
※ 이용요금은 변동될 수 있으므로 홈페이지 참조 또는 전화 문의 요망



◎ 부대시설
전기,무선인터넷,장작판매,온수,놀이터,산책로,마트, 편의점



◎ 주요시설
소화기 36개, 화재감지기 16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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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 관광 정보

⊙ 빙계서원


- 홈페이지
https://www.usc.go.kr/tour/main.tc

- 주소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계곡길 80 (춘산면)

신원록(申元祿)이 그의 스승 주세붕(周世鵬)이 우리나라 최초로 백운동에 서원을 세워 인재를 양성할 때,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돌아와 백씨인 정은 신원복(申元福) 과 상의하여 인재교육을 위해 장천(長川) 위에다 터를 잡아 서원을 짓기 시작했다. 1566년(명종 11) 장천 서원(長川書院)이 의성읍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자 7년 뒤인 1600년(선조 33) 유림에서 현재 위치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이듬해 원묘(院廟)를 준공하고 원액(院額)을 ‘빙계(氷溪)’로 고쳤다. 이때 이언적을 김안국과 함께 제향하였으며, 1689년(숙종 15)에는 향리의 선비들이 진소(陳疏) 하여 의성과 관련이 깊은 유성룡(成龍), 김성일(誠一), 장현광(張顯光) 등을 추 향하게 되었다. 그 뒤 1814년(순조 14)에 원묘(院廟)를 중수하였다. 고종 때 훼철된 후 빈터만 남아 있다가, 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으로 2006년에 복원되었다.

⊙ 빙계계곡


- 홈페이지
http://tour.usc.go.kr

- 주소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 신비함과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는 곳, 빙계계곡(氷溪溪谷) *

빙계계곡은 경북 8승의 하나로 1987년 9월 25일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얼음구멍과 바람구멍이 있어 빙산이라 하며, 그 산을 감돌아 흐르는 내를 빙계라 하고, 동네를 빙계리라 부른다. 빙계계곡은 빙계(氷溪) 3리 서원(書院)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삼복 때 시원한 바람이 나오며 얼음이 얼고, 엄동설한엔 더운 김이 무럭무럭 솟아나는 신비의 계곡이다. 계곡 안쪽에 자리한 보물 오층 석탑은 높이 8.15m의 대형 탑이며, 화강석으로 조성된 고려 초의 석탑이 있다. 마을 건너편에 수십 미터 높이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고, 그 아래 맑은 시냇물 가운데 우뚝 솟은 크고 작은 무수한 바위는 1933년 10월 4일 경북도내 경북 8승의 하나로 뽑혔을 정도로 아름다운 장관을 보여준다. 계곡 가운데 돋보이는 높이 10m, 둘레가 20m 정도의 유난히도 큰 바위에 빙계동(氷溪洞) 이란 커다란 글씨가 새겨진 건 임진왜난 때 여기 들른 명장 이여송(李如松)의 필적이란 얘기도 있다. 그 옆에 단 하나의 큰 바위 위에는 경북 팔승지일이라고 새긴 아담한 돌비(石碑)가 자리잡고 있다.
* 여덟 곳의 이름난 비경, 빙계 8경 *
빙계계곡은 깎아 세운 듯한 절벽 사이의 골짜기를 따라 시원한 물이 흐르며, 여덟 곳의 이름난 빙계 8경이 있다. 빙계 8경은 계곡 입구에서부터 용추(龍湫), 물레방아[水礁], 바람구멍[風穴], 어진바위[仁巖], 의각(義閣), 석탑(石塔), 얼음구멍[氷穴], 부처막[佛頂]이다. 용추는 빙계계곡 물에 패인 웅덩이이고, 물레방아는 주민들이 계곡물을 이용하여 방아를 찧던 것이다. 풍혈과 빙혈은 빙계리 입구에 있는 바위틈으로, 한여름에는 얼음이 얼어 영하 4도를 유지하고 겨울에는 영상 3도를 유지해 훈훈한 바람이 불어 나온다. 인암은 정오가 되면 ‘仁’자 모양의 그늘이 생긴다는 바위이고, 의각은 윤은보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각이다. 부처막은 빙산 꼭대기에 움푹 팬 곳으로 부처와 용이 싸울 때 생긴 것이라고 한다.
제1경 빙혈(氷穴)
마을 뒷산 산기슭의 바위 아래 너덧 명이 들어 설수 있는 방 한칸 만한 넓이의 공간이다. 여기선 입춘(入春)이 되면 찬 기운이 나고 한여름엔 얼음이 얼어 있다. 입추(入秋)가 지나면 차차 녹아 동지(冬至)에는 볼 수 없고 훈훈한 바람이 나온다.
제2경 풍혈(風穴)
동구 도로 변 바위와 바위 사이에 뚫린 좁고 깊은 곳으로 여름엔 찬바람이 나오고, 겨울철은 훈훈한 더운 바람이 일고 있다. 그 근방 크고 작은 바위 사이엔 거의 같은 현상이 일어 나는 편이다.
제3경 인암(仁岩)
옛날 서원(氷溪 書院)터 앞에 위치한 나비 1.2m, 높이 2.4m가 넘는 큰 바위다. 그 전면에는 햇빛으로 인해 정오가 되면 어질 인(仁)자 모양의 그늘이 나타나 세상 인심을 선도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제4경 의각(義閣)
임진란 때 윤은보(尹殷甫)가 모재, 회재(晦齋) 두 분의 위패를 청송 주왕산(周王山)으로 모셔 들어가 7년 동안 삭망시 향화를 이어와 잘 피난시켰다가 평란 뒤 서원에 안주케 했다. 그 공으로 의사라 일컬음을 받고 그이 갸륵한 의리를 기려 비와 이 전각을 세워 의사각(義士閣) 이라고 불린다.
제5경 수대(水 )(물레방아)
시냇물을 이용해 매일 많은 곡식을 찧던 규모 큰 물레방아가 있었다가 오래 전 자취를 감춰 버렸고 그 빈터 가까이 대한불교법화종 소속 빙계정사(氷溪精舍)가 세워져 신도들의 발길이 잦다.
제6경 석탑(石塔)
빙산사 구지(氷山寺 舊址)에 당시 (신라말 내지 고려초) 이뤄진 5층 모전(模塼) 돌탑으로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제7경 불정(佛頂)
불정봉(佛頂峰) 꼭대기에 움푹 파인 데로, 그 옛날 부처가 용과 싸울 적에 찍은 쇠스랑 자국이란 설이 전한다.
제8경 용추(龍湫)(용소)
개울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 밑 시냇물이 굽이치는 곳에 깊은 웅덩이가 있었다는데 현재 거의 메워졌다. 부처와 싸운 용의 머리가 부딪쳐 파인 데라 한다.

⊙ 의성 산운생태공원


- 홈페이지
http://sanun.usc.go.kr

- 주소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사길 19

구 산운초등학교(폐교)를 활용하여 자라나는 세대의 자연학습 및 환경에 대한 가치관 형성을 위한 공간으로 마련하였다. 이곳은 자연생태관찰과 전통문화를 체험하는 산교육장으로 의성의 명산인 금성산과 신라시대 의상조사가 창건한 수정사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보유수종은 관목류 및 초화류 53종이며, 주요시설로는 생태관 1동, 연못 2개소, 분수, 목교, 관찰데크, 솟대, 쉼터, 산책로 등이 있다. 넓은 마당에는 50여 종에 이르는 나무와 풀·꽃들이 자라며, 연못·분수·나무다리·관찰데크·솟대·장승·쉼터·산책로 등을 조성하였다.


⊙ 수정사(의성)


- 홈페이지
의성군 문화관광 http://www.usc.go.kr/tour/main.tc

- 주소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사길 420

신라 신문왕 때 의상조사가 창건한 사찰. 금성산 계곡에 위치하고 있으며 깊은 골짜기 사이로 수정같이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개울가에 지어져있다.수정사의 창건에 관해서는 신라 신문왕 때(681~691) 의상대사가 ‘수량암(修量庵)’이라는 이름으로 건립하였다고 하는 구전만 있을 뿐, 조선 중기까지 전하는 사적이 없어 상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다.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수량사(修量寺)’라고 나와 있으나, 18세기의『가람고(伽藍考)』에서는 ‘지금은 수정사(水淨寺)라고 부른다.’고 나와 있다. 특히, 조선 선조 25년(1592)의 임진왜란 당시에는 사명 유정스님이 머물면서 금성산(金城山)에 진을 치고 왜적을 격퇴했다.
그러나 조선 헌종 1년(1835)에 큰 불이 나 대광전만 남기고 모두 전소되었다.그 뒤에 구담 전홍(九潭展鴻) 스님이 옛터 위쪽인 지금의 자리에 중창하였다. 1965년 이래 6년동안 월산(月山) 스님이 중수하며 요사를 짓고 월영루, 격외선원, 사명영당, 영지, 축대 등을 세웠다. 1973년에는 정부의 보조금으로 성견(性見) 스님이 대광전과 향각을 중수하였다. 이어 1993년 주지로 부임한 총혜(聰惠) 스님이 명부전과 범종각을 새로 짓고, 산신각과 설선당(說禪堂)을 수리하였다. 1999년에는 범종을 조성하였고, 2001년에 요사를 새로 지으며 오늘에 이른다.

* 수정사 인근의 볼거리 *
절터에는 대가람지가 있으며 원형 그대로의 석탑이 보존되어 있다. 수정계곡 마을아래 구름이 감도는 것이 보여 마을을 산운이라고 하는 대감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이 마을은 영천이씨 집성촌으로 자연지형 경관이 수려하며 다양한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어 볼거리도 풍부하다.문화재로는 지방유형문화재 학록정사, 전통건조물 운곡당, 전통건조물 점우당과 중요민속자료 소우당 등의 전통고가옥 30여 동이 현존하며 조선조 이광준(1531∼1609)부사, 이민성 참의, 이의발 판서, 국권침탈 때 애국지사로 건국공훈을 세운 이태식, 그외 많은 후손들이 조정과 향리에 이름을 남겼다.

⊙ 산운마을


- 주소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산운마을길 40-9

경상북도 의성 산운마을은 400여 년의 역사를 이어온 영천 이 씨 집성촌으로 ‘대감 마을’로도 불린다. 조선 선조 때 강원도 관찰사를 지낸 학동 이광준이 정착해 마을을 이뤘고, 이후 내리 3대가 급제를 하는가 하면 광해군 때 승지를 지낸 경정 이민성, 현종 때 형조판서를 지낸 운곡 이희발 등을 배출하며 명문으로 이름이 높였다. 일제강점기에는 독립운동가인 경산 이태직이 충절과 명예를 지켜내기도 했다. 산운마을은 수많은 전설을 간직한 금성산을 뒤에, 비봉산을 옆에 두고 마을 남쪽으로는 쌍계천이 흘러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풍수명당이다. 마을 이름이 “산운”이 된 이유는 불교가 융성했던 신라시대 때 수정계곡 아래 구름이 감도는 것이 보였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 내에 학록정사와 운곡당, 소우당, 점우당 등 지정문화재와 전통가옥이 다수 남아 있어 볼거리가 많다.



본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에서 '23년'작성하여 공공누리 제1유형으로 개방한 '국문 관광정보 서비스'을 이용하였으며, 해당 저작물은 '한국관광공사,https://kto.visitkorea.or.kr/kor.kto'에서 무료로 다운받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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