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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대구 군위군] 군위전투전승기념공원 캠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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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전투전승기념공원 캠핑장


- 홈페이지
https://www.gunwi.go.kr/

- 주소
대구광역시 군위군 삼국유사면 동부로 81

군위전투 전승기념공원 캠핑장은 경북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수리에 자리 잡고 있다. 군위군청을 기점으로 31km가량 떨어져 있다. 자동차를 타고 경북대로와 동부로를 번갈아 달리면 닿는다. 도착까지 걸리는 시간은 30분 안팎이다. 데크로 이루어진 일반 캠핑 사이트 16면과 글램핑 6개 동이 마련되어 있다. 일반 캠핑 사이트는 간격이 넓어 프라이빗한 캠핑이 가능하다. 글램핑 객실 내부에는 TV, 에어컨, 냉장고, 난방기구, 취사도구 등이 갖추어져 있다. 캠핑장이 군위전투 전승기념공원 내부에 위치한 덕분에 전투 기념공간을 둘러볼 수 있다.


※ 소개 정보
- 개장기간
봄,여름,가을,겨울

- 문의및안내
054-383-9480

- 쉬는날
연중무휴

- 신용카드가능정보
없음

- 애완동물동반가능정보
불가

- 예약안내
전화,현장

- 유모차대여정보
없음

- 이용시간
- 막사 데크 13:00~익일12:00
- 체험막사(글램핑) 14:00~익일11:00

- 주차시설
있음

- 주차요금
없음





◎ 이용요금
20,000원~120,000원
※ 이용요금은 변동될 수 있으므로 홈페이지 참조 또는 전화 문의 요망



◎ 대여안내
릴선,화로대,난방기구,침낭



◎ 체험프로그램
산악전투체험장



◎ 주요시설
소화기 22개, 화재감지기 15개



◎ 부대시설
전기,장작판매,온수,트램폴린,놀이터,산책로,마트, 편의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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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 관광 정보

⊙ 군위 화산산성 전망대


- 주소
대구광역시 군위군 고로면 화산길 619-26

해발 700미터에 경북 유일의 고랭지 채소를 재배하는 청정지역으로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하고 있으며 동틀 무렵 화산마을에서 내려다보는 환상적인 운무는 마치 신선의 세계로 온 듯한 착각을 일으키며 일출과 새벽하늘 별빛이 장관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커다란 풍차와 액자 포토존도 있어 사진 찍고 경치 감상하기에 좋다.

⊙ 바람이좋은저녁


- 홈페이지
https://cafe.naver.com/camp600

- 주소
대구광역시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산산성길 65

경북 군위 화산 해발 600미터 위에 있는 산속 캠핑장이다. 산정상에 있는 캠핑장으로 일부는 비포장 구간이 있어 날씨 확인 후 이용하는 것이 좋다. 캠핑장에서 보이는 풍경, 저녁노을과 이름처럼 저녁 바람이 좋은 캠핑장이다.

⊙ 학소대


- 홈페이지
http://www.gunwi.go.kr/tour

- 주소
대구광역시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인각사 건너편)

고로면 화북리에서 석산리로 가는 길에 보면 인각사 맞은 편에 바위절벽이 있으며 그 아래로 위천이 흐르고 있는 병풍처럼 아름다운 풍경이 나타난다. 이곳이 예전에 학들이 둥지를 틀고 서식했다고 하여 학소대라는 이름이 붙여진 곳이다. 학소대 좌우로는 송림이 우거진 석산이 자리잡고 있으며, 주변의 경관이 아름다워 예로부터 시인묵객들이 음풍영월하던 곳으로 그 아래는 맑고 깊은 물이 흐르고 있다. 학소대 앞에는 기린을 닮았다는 화산의 뿔에 해당하는 자리에 위치해 있다고 인각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인각사가 있다. 이 근처에는 인각사와 학소대 뒤를 잇는 아미산이 있다.


⊙ 일연공원


- 홈페이지
https://www.gunwi.go.kr/fun/tour/

- 주소
대구광역시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북1길 12

일연공원은 경북 군위군 삼국유사면에 자리 잡고 있다. 군위댐 하류에 조성된 이곳은 차박을 즐기는 사람과 물놀이를 즐기는 가족단위 여행객이 많다. 또한 절벽에서 떨어지는 일연폭포의 폭포수는 장관이다. 삼국유사와 관련된 볼거리들이 많고 산책로는 유모차나 킥보드를 이용하기에도 불편이 없도록 조성해 놓았다. 공원은 운동 시설이 갖춰져 있으며 야생화 화원 등을 갖춘 산림 생태지구와 해오름광장, 역사 문화지구, 습지생태지구로 구성돼 있다. 공원 내 취사나 캠핑은 금지돼 있지만 수심이 얕아 물놀이하기 좋고 노지 캠핑을 즐기는 사람들도 많다.

⊙ 화계서원


- 홈페이지
http://www.gunwi.go.kr/tour
http://www.cha.go.kr

- 주소
대구광역시 군위군 의흥면 금양3길 16-3

돈암공(遯巖公) 휘(諱) 손 기남(孫 起南)을 모시기 위하여 1726년 (영조2)에 창건되었다가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897년(광무1년 丁酉)에 당시 의흥군수(義興郡守) 신 태철(申 泰哲)에 의해 복원되었으며 현재 생존해있는 밀양손씨 후손들의 구전에 의하면 대원군의 서원 철폐당시 선조들 집집마다 화계서원의 주요목재(기둥과 대들보 및 석가래 등)를 감추어 두었다가 새로 복원하여 숭덕사(崇德祠) 모성당(慕聖堂)으로 개칭하여 현재 보존하고 있으며 밀양 손씨 (密陽孫氏) 돈암공파(遯巖公派) 종중에서 소유와 관리를 맡고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첫째 일요일에 향사를 지낸다.


⊙ 화산산성


- 홈페이지
http://www.gunwi.go.kr/tour

- 주소
대구광역시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군위군 삼국유사면과 영천시의 경계지역에 위치한 화산은 해발 828m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고로면의 산 중에 크기가 가장 큰 산이다.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산이지만 산정상은 평탄한 분지로 울창한 숲이 있어서 산수가 좋기로 유명하다. 정상에 올라보면 산성이 눈에 들어오는데 지방기념물인 화산산성이다.
화산 일대에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성된 산성이며, 면적은 10,813㎡이다. 1709년(숙종 35) 윤숙이 천연의 요새인 화산에 병영을 건설하고자 4문의 기초 공사를 시작하여 홍예문을 짓고 혜휘, 두청 두 스님으로 하여금 군수사(군수 물자를 비축해 두기 위한 사찰)를 짓게 하였다.
국가의 지원을 받지 않고 윤숙의 재산과 승려들의 시주에 의해 시작된 공사로 일체의 민폐를 끼치지 않았다고 한다. 홍예문에서 수구문에 이르는 거리 200m, 높이 4m, 너비 5m의 성을 축조하던 중 심한 흉년과 질병으로 인하여 공사가 중단되었는데, 윤숙마저 전라도 병마절도사로 전출되고 20년간 후임자가 없어 공사가 헛되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지금은 아름다운 반월형 홍례문과 수구문이 남아 있으며 산성 안에는 옥정영원이라는 샘물이 있는데 지름 5m의 바위구멍에서 솟는 석간수이다. 추운 겨울에도 얼지 않으며, 여름에도 10℃ 이하의 시원한 냉수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산 정상에는 화산산성 하늘전망대와 풍차전망대가 있어 주변 화산마을과 군위호, 군위댐을 포함하여 삼국유사면을 둘러싼 산도 볼 수 있다. 풍차전망대에는 화산산성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는 문화해설사가 있다.

⊙ 군위 인각사지


- 홈페이지
http://www.gunwi.go.kr/tour
http://www.cha.go.kr

- 주소
대구광역시 군위군 고로면 삼국유사로 250

인각사지는 군위군 삼국유사면 화산의 북쪽 기슭 강가 퇴적지대에 지리잡은 절터이다. 1991년 말 경북대학 박물관에서 실시한 발굴조사를 통해 대웅전터로 추정되는 기단부에서 통일신라시대의 건물터가 확인되었으며 사적 정식 명칭은 [군위 인각사지]이다.
인각사는 643년(선덕여왕 11)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통일신라시대부터 번성하여 고려시대에는 국사 일연 스님이 1284년(충렬왕 10)부터 임종할 때까지 5년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저술하였다. 이 당시 인각사는 구산문도회를 두 번이나 개최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당시 전국 불교의 본산임을 알 수 있다.

* 소유자 - 인각사
* 면적 - 13,302㎡
* 시대 - 통일신라

⊙ 인각사(군위)


- 홈페이지
http://ingaksa.org

- 주소
대구광역시 군위군 고로면 삼국유사로 250 (고로면)

인각사는 643년(선덕여왕 11)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통일신라시대부터 번성하여 고려시대에는 국사 일연 스님이 1284년(충렬왕 10)부터 임종할 때까지 5년 동안 이곳에 머물면서 [삼국유사]를 저술하였다. 이 당시 인각사는 구산문도회를 두 번이나 개최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당시 전국 불교의 본산임을 알 수 있다.
조선 후기 들어서는 퇴락하여 거의 폐사가 되었다가, 1721년(경종 1) 스님이 화주(化主)를 맡고 배흥일이 시주하여 대웅전, 극락전, 승방, 종루 등이 다시 갖추어지는 중수가 이루어졌다. 사적으로 지정된 인각사는 경내에 보물인 일연스님의 부도탑인 [보각국사탑과 비]와 [군위인각사석불좌상]이 있고 일연의 업적과 삼국유사에 관한 체계적인 연구를 위한 일연학연구소와 삼국유사 박물관이 있다.
사찰의 앞에는 수많은 백학들이 서식하였다는 운치있는 학소대가 있다. 인각사에서 조금 올라가면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병암과 마주치게 된다. 밑으로는 수정같은 맑은 물이 흐르고 있고 여름이면 매일 수 천명씩 이곳에서 피서를 즐기기도 한다.

[인각사 석불좌상]
이 불상은 10~11세기에 제작한 불상으로, 실존하는 고승을 모델링하여 조성한 불상양식과 계층을 같이 하고 있다. 광배와 한 돌로 구성된 석불좌상인데 광배는 거의 깨어졌거나 불상은 완전하게 남아있고, 머리는 육계가 불분명하지만 윤곽선이 표현되어 육계가 있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머리칼도 나발이 꽤 큼직하게 묘사되고 있다. 가부좌한 두발은 가사로 덮여 있으나 오른손은 내리고 왼손은 무릎 위에 얹는 항마촉지인의 두 손은 비교적 작게 표현한 것이 인상적이다.

[인각사 보각국사탑 및 비]
보각국사 일연의 탑과 비는 고려 충렬왕 15년(1289)에 입적한 일연스님의 부도탑과 비문이다.보각국사 일연스님이 노년에 인각사에서 노모를 지극히 봉양하고 삼국유사를 저술하는 등 많은 업적을 추모하기 위해 보각국사비와 정조지탑이 세워졌다고 한다.

[인각사 보각국사탑]
탑의 상층은 불상, 중층은 연화, 하층은 토끼·사자·원숭이 등 여러 동물의 형상이 조각되어 있다.아침에 해가 뜨면 이 탑에서 광채가 나와 멀지 않은 곳에 승려 일연스님 노모의 묘를 비추었다고 한다.팔각의 탑의 중심부에 보각국사 정조지탑이라는 탑명과 사천왕입상과 보살입상이 조각되어 있다.원래 이 탑이 인각사 동쪽 2km 떨어진 부도 골에 있었으나 외지 사람들이 자기 조상의 묘를 안장하기 위해 1928년 서편으로 50m쯤 옮겨 놓은 것을 1978년에 인각사 경내로 다시 옮겼다고 한다.
- 조성시대 : 고려 충렬왕 21년
- 소유자 : 인각사
- 규모 : 탑고 2.4m / 재료 : 화강암

[인각사 보각국사비]
비는 충렬왕 21년(1295) 국사의 불제자인 법진에 의하여 세워졌다. 높이 6자, 폭 3자반, 두께 5인치인 탑신의 비문은 당시의 문장가인 민지가 왕명을 받들어 지은 명문이며, 글씨는 왕명에 의하여 진나라까지 가서 왕희지의 유필을 집자하여 만들었으며, 지금은 형체가 많이 훼손되었으나, 비문은 오대산 월정사에 사본이 있어 알 수 있다.

⊙ 한광사


- 홈페이지
https://www.yc.go.kr/tour/

- 주소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권응수길 126

한광사는 신라 문무왕 때 의상 스님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한광사 앞마당에 놓인 석불 좌상과 그 옆의 삼층석탑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이므로 이 일대가 신라시대의 절터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뒤의 연혁은 남아 있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서 폐사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다가 1958년에 옛 절터에 새로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원래는 이 절의 전면 동서로 각각 탑이 있었는데 현재는 한 기만 남아 있고 한 기는 산산이 분해된 채 건물의 주춧돌로 사용되었거나 뜰에 흩어져 있다. 그리고 현재 보존되어 있는 탑도 제 위치가 아닌 것 같으며 동서 두 탑 가운데 어느 것이지 구분할 수도 없다.

석불 좌상은 신라 말 고려초의 전형적인 양식을 갖춘 비로자나 불상으로서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육계가 분명치 않은 나발의 머리카락, 작고 둥근 현실적 얼굴, 좁은 어깨, 빈약한 체구 등에서 단정하게 참선하고 있는 선사(禪師)의 모습과 분위기를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특징과 함께 두 손을 가슴에 모아 아래위로 포개어놓은 지권인(智拳印)의 비로자나 수인, 얇게 빗은 듯 규칙적인 평행밀집 옷주름 등은 바로 9세기나 10세기의 전형적인 비로자나 석불 양식이다.

* 창건 배경 및 역사

한광사는 신라 문무왕(재위 661∼680) 때 의상 스님이 창건하였다. 현재 한광사 앞마당에 놓인 석불 좌상과 그 옆의 삼층석탑이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이므로 이 일대가 신라시대의 절터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그 뒤의 연혁은 남아 있는 기록이 없어 알 수 없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서 폐사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다가 1958년에 최명도(崔命道) 스님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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