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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경기도 안성시] [경기옛길 영남길 제9길] 죽산성지순례길(죽산면소재지 ~ 일죽면 금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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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옛길 영남길 제9길] 죽산성지순례길(죽산면소재지 ~ 일죽면 금산리)


- 홈페이지
https://ggcr.kr

- 주소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초교길

죽산성지순례길은 천주교 탄압이 극심했던 시기에 수많은 천주교인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가슴 아픈 역사를 지닌 길이다. 죽산면소재지를 출발하여 죽산 성지에 이르면 넓고 아름답게 조성되었지만 슬픈 순교성지를 통과하게 된다. 죽산성지를 지나면 일죽면의 넓은 들을 지나게 되는데 멀리 보이는 성당 건축물과 함께 이국적인 풍광을 감상할 수 있다. 장암리, 화봉리, 금산리까지 이어지는 들길은 영남대로 주변에 있던 여러 재미있는 전설과 민담을 간직한 곳이다.

(출처 : 경기옛길 홈페이지)

 


※ 소개 정보
- 문의및안내
031-231-8524

- 쉬는날
연중무휴

- 신용카드가능정보
없음

- 유모차대여정보
없음

- 이용시간
상시개방

- 입장료
무료





◎ 코스안내
길이 : 9.9km
소요시간 : 약 3시간 30분
구간 : 죽산면소재지 - 죽산성지 - 일죽면 장암리 - 일죽면 화봉리 - 일죽면 금산리



◎ 이용요금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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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위 관광 정보

⊙ 죽산향교


- 홈페이지
https://www.heritage.go.kr

- 주소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향교길 54-45

안성시 죽산고등학교 옆에 자리한 죽산향교는 중종 28년(1533)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됐으며 임진왜란 때 불탄 뒤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외삼문 밖으로 하마비와 홍살문이 있고 경사지 대지 아래쪽에는 교육 공간인 동·서재가 생략된 명륜당과 내삼문이 구성되어 있으며, 위쪽에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과 동·서무를 두는 전학후묘의 형식을 갖추고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이며, 현재 5성(五聖), 10철(十哲), 송조 6현(宋朝六賢), 우리나라 18 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되어있다. 동무와 서무는 각각 앞면 3칸, 옆면 1칸 규모로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되어있다. 강당인 명륜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를 갖추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와 책 등을 지원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과 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경기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으며, 향교의 운영은 전교 1명과 장의 여러 명이 담당하고 있다.

⊙ 안성 봉업사지


- 홈페이지
http://www.anseong.go.kr/tour
http://www.cha.go.kr

- 주소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비봉산 자락의 죽산면 죽산리에 있는 봉업사지는 1966년 경지정리 작업을 하다가 출토된 향완과 반자에서 이곳이 봉업사였음을 말해주는 명문이 발견되어 비로소 봉업사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 절의 명칭이 중요한 이유는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말하는 [고려 태조의 진영을 모셨던 비봉산 아래의 봉업사]가 바로 이곳임을 밝혀주는 것으로, 사찰의 중요성이 증명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태조의 진영을 모셨다는 것은 이곳이 진전 사원이었다는 의미인데 진전 사원이란 왕실의 의지에 따라 죽은 왕의 진영을 모시고 위업을 기리며 명복을 비는 사찰로 태조의 진전 사원은 전국의 이름난 사찰(개성의 봉은사, 논산 개태사 등)에 두었다.
지금은 그 터만 남아있어 황량하지만 봉업사가 결코 만만한 사찰이 아님을 밝혀주는 것이다.
봉업사지 5층 석탑은 고려 시대 초기 탑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경기도 내의 탑들 중에 가장 조형미가 뛰어난 것으로 인정되고 있다. 특히 1968년 복원공사 때는 사리 장치와 유물이 발견되었다.
사지의 석불입상은 죽주산성 아래 쓰러져 있던 것을 봉업사지로 옮겨와 세웠다고 하는데 고려 초기에 유행했던 지방 불상 양식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몸체를 약간 뒤로 젖히고 가슴을 내밀어 꼿꼿하게 서 있는 모습이 매우 당당하다.
봉업사지 삼층석탑은 밭 한가운데 서 있는데 기단 면석 아래는 땅에 묻혀 온전한 모습을 알기 어렵고, 혜소 국사와 연관이 있다고 전하나 확실하지는 않다.
마을 사람들은 석불과 삼층석탑을 기자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던 같고 가까운 곳의 태평미륵과 함께 곳곳이 기자 신앙의 흔적인 것으로 추측된다. 2023년 7월까지도 봉업사지는 사적 지정을 위한 문화재 조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다.

⊙ 안성죽산리당간지주


- 홈페이지
https://www.heritage.go.kr

- 주소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당간지주는 부처와 보살의 공덕과 위신을 기리는 장엄용 불교 용구인 당(일종의 깃발)을 달기 위한 당간을 고정해 주는 두 개의 지주대를 말한다. 주로 절의 입구에 세워져 있다.
안성죽산리당간지주는 보물로 지정된 안성 봉업사지 5층 석탑 앞 약 30m 떨어진 자리에 있으며 높이 4.7m, 가로 0.76m, 세로 0.5m이다. 전체적으로 거칠게 다듬어 정연하지는 못하다.하지만 규모가 상당히 크고, 봉업사를 크게 중창할 때 함께 제작한 것으로 보여, 고려 초기에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당간지주는 기단부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고려 시대 들어와 세련되고 장식적인 외관보다는 안정적이고 기능에 충실한 당간지주를 건립하는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 안성 봉업사지 오층석탑


- 홈페이지
https://www.anseong.go.kr/tour

- 주소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148-5

안성 봉업사지 오층석탑은 안성시 죽산면 봉업사 터에 있는 고려시대에 조성된 석조 불탑이다. 봉업사는 남한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고려 태조의 진전사원 (왕이나 왕비를 위한 사당)으로 우리나라에서 단일 유적으로는 가장 많은 유물이 출토된 곳이다. 봉업사란 말 그대로 나라를 창업하면서 받들던 절이란 뜻이며, 고려 창업을 기념한 국사찰이었으며 왕건의 영정이 봉안되어 고려가 망하기 전 475년 동안 고려 왕실에서 한 해도 빠짐없이 선왕에 대한 예를 올렸던 기록이 있다.
석탑은 단층 기단 위에 5층의 탑신부가 형성되고, 정상에 상륜부를 장식한 일반형 석탑이다. 기단은 하나로 짠 두툼한 널돌 위에 올려 완성하였는데, 석재가 두툼한 탓에 전체적으로 둔중한 느낌을 준다. 기단 위 탑신은 1층 몸돌만 4장으로 이루어졌고 나머지는 한 돌로 구성했다. 각 층의 네 모서리에는 폭이 좁은 기둥을 새겼다. 탑의 전체적인 체감도 적당하지 못하고, 각 부의 조각도 형식에 그치고 있다. 신라의 양식을 계승하고 있는 까닭에 석재의 조합 방식은 우수하지만 기단에 새긴 조각이 형식화되는 점 등에서 약화되고 둔중해진 고려석탑 특유의 모습이 나타난다.

⊙ 안성죽산리삼층석탑


- 홈페이지
http://www.anseong.go.kr/tour
http://www.cha.go.kr

- 주소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봉업사의 옛터로 알려진 곳에 자리했으며 방형의 이중 기단 위로 3층의 탑신을 갖춘 석탑이다. 발굴 조사결과 통일신라 석탑의 하층 기단을 재사용했음이 밝혀졌다. 또한, 석탑 기단 하부에서 태화 6년(832)의 기와가 출토되어 통일신라부터 이곳에 사찰이 있었음이 확인됐다.
따라서 죽산리 삼층석탑은 후삼국의 혼란 속에서 사찰과 석탑이 훼손된 후, 고려 건국과 함께 대대적으로 석탑이 정비되면서 통일신라 석탑 기단을 재사용해 건립된 석탑임을 알 수 있다.
하층기단은 지면에 갑석만 노출되어 있고, 상층기단은 투박하게 다듬은 면석 모서리에 측면 기둥인 우주를 표현했다. 두꺼운 갑석 윗면에는 고려시대 석탑에 자주 사용된 복련 형식의 연잎 문양을 조각했고, 중앙에 사각형 탑신 받침을 낮게 표현했다.
탑신석과 지붕을 모방한 옥개석은 각기 1매의 석재로 이루어졌다. 탑신은 상층기단과 유사한 높이로 제작됐지만, 2층 이상부터 급격히 축소되어 고려 석탑 특유의 조형미를 보여준다.
옥개석 낙수면은 비교적 완만한 편인데, 추녀면은 수평을 이루다가 전각부에 이르면 반전을 이루고 있다.

⊙ 안성죽산리석불입상


- 홈페이지
http://www.anseong.go.kr/tour
http://www.cha.go.kr

- 주소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산리

안성 죽산리 석불입상은 봉업사지 사역의 북쪽에 위치한 용화사 경내에 있다. 안성 죽산리 석불입상은 높이 3.36m로, 죽산산성 아래에 쓰러져 있던 것을 다시 세운 것이다. 머리와 신체가 절단되었지만, 비교적 상태가 좋은 편이다.1980년 6월 2일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다.
원형 연꽃 좌에 직립한 이 불상은 풍문한 얼굴에 코는 마모가 심하지만, 지긋한 눈과 작은 입매가 단정한 인상을 주며 소발(素髮)의 머리에 큰 육계와 긴 귀가 특징적이다. 얼굴에 비해 어깨는 왜소한 편인데 두 팔을 몸에 붙이고 있어 위축된 듯한 어깨와 더불어 경직된 모습으로 보인다. 두 손은 신체에 비해 큰 편인데 오른손은 앞으로 들어 외장한 여원인(與願印) 형태이고 아래로 내려 몸에 붙이고 있다. 양어깨를 감싼 통견의 법의는 어깨에서부터 배 부근까지 일정한 간격의 평행 주름을 이루며 흐르는데 양다리에서 각기 동신 타원형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옷 주름 양식은 통일신라시대부터 많이 유행하던 불의 표현 양식 중의 하나인데 이 불상에서는 다소 경직된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무릎 아래에는 군의(裙衣)가 보이고 두 발은 현재 보수가 된 것인데 가지런히 정면을 향하고 있다.
복련이 돌려 새겨진 원형 연화좌는 오랫동안 매몰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려 초기에 유행하였던 이 지방 불상 양식의 특징을 살필 수 있는 자료로 높이 평가된다.

⊙ 두현리 석조삼존불입상


- 홈페이지
http://www.anseong.go.kr/tour/

- 주소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두현리

두현리 석조삼존불상은 태봉산 아래 민가 옆 보호각 안에 봉안되어 있으며 불상은 지상에 노출된 전면에 저부조(低浮彫)로 입상의 삼존(三尊)을 조각하였다. 삼존불상은 허리 이하가 땅속에 묻혀 있어 전체 높이를 알 수 없지만 지상에 노출된 높이가 본존 118cm, 우협시보살(右挾施菩薩)이 86cm, 좌협시보살이 99cm이다. 삼불상은 마모가 너무 심하여 세부적인 표현을 알 수 없는데 전체적으로 불신에 비하여 불두(佛頭)가 크게 강조된 것이 특징이다. 또 본존은 높은 육계(肉桂)를 지니고 목에는 희미한 삼도(三道)가 표현되었으며 양 어깨를 덮은 통견은 밑으로 늘어져 가슴과 허리 밑으로 U자형의 옷 주름이 길게 늘어져 있다. 석불의 뒷면은 아무 조식(彫飾)을 가하지 않았다.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되지만 훼손이 너무 심하여 불상의 세부 표현을 거의 알 수 없을 정도이다. 두현리 마을 주민들이 더 이상의 훼손을 방지하기 위하여 보호각을 만들어 보존하고 있다.

⊙ 매산리석불입상


- 홈페이지
https://www.heritage.go.kr

- 주소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미륵당길 32-2

안성 봉업사지 인근에 있는 높이 3.9m의 보살상이다. 볼륨감 없이 평평한 돌기둥 같은 신체에 전체적으로 세부를 정교하게 조각하지 않고 높은 원통형의 보관에 사각의 보개(寶蓋 ; 인도에서 귀인의 외출시에 사용하던 양산을 불상의 머리 위에 갓처럼 씌운 것)까지 얹은 표현은 고려 전기 불상의 양식적인 특징이다. 보개는 이후 변형을 이루면서 충청도와 경기 남부를 중심으로 한 불상에 많이 나타나는 고려 전기 불상의 특징이다. 방형의 넓적한 얼굴에는 가늘게 뜬 눈이 수평으로 표현되고 짧은 코에 작은 입을 표현하였다. 얼굴의 세부 표현은 높은 관과 더불어 이 작품의 시대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둥근 어깨에는 왼쪽 어깨에만 다소 두꺼운 법의를 걸쳤는데, 왼쪽 어깨로부터 신체 전면을 덮으며 내려오는 법의는 가슴에서부터 ‘U’자형 주름이 계단식으로 표현되었고, 이는 다시 양쪽 다리에서 각각의 ‘U’자 모양을 이루며 발끝까지 이어진다. 보살상답게 양 손목에는 팔찌를 하고 있으며, 오른손은 가슴에서 손바닥을 밖으로 내보인 상태로 손가락을 살짝 구부리고 있고, 손등을 밖으로 한 왼손은 배에 대고 있다. 원형 보관과 보개로 이루어진 머리장식과 돌기둥 같은 신체 표현 등에서 고려 시대 전기에 충청도와 경기 남부를 중심으로 유행한 대형 석불의 계통에 속하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 죽주산성


- 홈페이지
http://www.anseong.go.kr/tour/
http://www.cha.go.kr

- 주소
경기도 안성시 죽산면 죽양대로 111-71

태평미륵이 등을 기대고 서 있는 매산리 비봉산에 죽주산성이 있다. 죽주산성은 신라 때 내성을 쌓고, 고려 때 외성을 쌓았다. 언제 쌓았는지 알 수 없는 본성은 1.7㎞이고, 외성 1.5㎞, 내성 270m로 세 겹의 석성이 지금도 남아있고 보전 상태가 좋다. 죽주산성은 특히 임진왜란 때 격전지였다. 왜군에게 내주고 말았던 죽주산성을 황진 장군이 기습작전으로 탈환에 성공하자 왜군은 더 이상 용인과 이천을 넘보지 못했다. 포루가 만들어진 산정에 올라서면 안성벌, 이천ㆍ장호원이 한눈에 잡힌다. 충청, 전라, 경상도의 삼남과 서울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충지이자 군사 전략적인 요새였던 이곳을 아군의 기지로 삼으려는 시도는 나라마다, 전시마다 치열하였다.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산성의 내성 곁에는 몽고군을 물리친 송문주 장군의 전공영각과 재실이 있다. 재실을 지나쳐 내려오면 쉼터가 있다. 죽주산성을 이리저리 둘러보는 것보다는 산성을 따라 산책하듯 걸어보는 맛이 일품이다. 주변의 울창한 소나무와 침엽수들이 길동무를 해주어 상쾌한 발걸음을 재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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